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시보레'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크루즈(국내명 라세티 프리미어)'의 현지 생산계획을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자동차업계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GM대우 기술권 확보 요구'와는 정 반대의 양상이다.

'시보레 크루즈'의 원형인 라세티 프리미어는 GM의 글로벌 차량 개발 계획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해 출시된 차량이다. GM대우는 이 차의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GM은 내년 4월로 예정됐던 준중형차 '시보레 크루즈'의 미국 내 출시 일정을 3개월 정도 늦출 예정이라고 29일(현지시간) 밝혔다. 최대한 완성도를 끌어 올리겠다는 게 이유다.

크루즈의 출시 연기에 대해 클라우스-피터 마틴 GM 대변인은 "GM은 크루즈 출시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완전함을 기하기 위해 출시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마틴 대변인은 이어 "유럽과 중국에서 먼저 출시된 크루즈에 문제가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연기 결정은 새로 출시되는 크루즈를 고연비 엔진 탑재모델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선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 GM'의 원동력 '라세티'

크루즈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로즈타운 조립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여기서 출하된 차는 미국은 물론 북미지역 전역에서도 판매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GM대우의 '라세티 프리미어'로 출시된 크루즈는 현재 중국 지역에는 CKD(Complete Knock Down·반제품 현지 조립생산)로, 유럽 시장에는 완제품으로 이미 수출되고 있다.

GM은 크루즈의 현지생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GM 측은 이 차의 미국 현지생산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으며, 경쟁사 포드가 비슷한 시기 출시할 신차 '올 뉴 포커스'와의 경쟁 구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GM은 크루즈의 현지 생산을 위해 로즈타운 공장 증설에 3억5000만달러를 투입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공장에는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는 등 파산보호절차를 거쳐 출범한 '뉴 GM'의 수익성 회복을 위한 전초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크루즈의 현지 대량생산에 초점을 둔 이 공장의 증설을 통해 GM 측은 약 1000명 규모의 해고근로자 복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프리츠 헨더슨 GM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크루즈의 출시는 내년 GM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5일 GM대우 부평 본사를 찾았을 당시에도 라세티 프리미어와 경차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를 직접 시승한 후 성능에 크게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개발 주도한 GM대우, 기술비 건질까?

이 같은 GM의 행보에 대해 GM대우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과 GM대우 공장 근로자 등 자동차업계에서는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다.

산업은행 측에서는 GM대우가 개발한 차량의 기술에 대한 권리의 인정 여부를, GM대우 노조 측에서는 당초 수출되는 차종의 해외생산에 따른 국내 생산량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당초 GM대우에 대한 대출 승인의 조건 중 하나로 이 회사가 개발한 차량에 대한 라이선스를 보유토록 해 만약 GM이 철수하더라도 GM대우의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요구해 왔다.

GM대우는 지난해 출시한 라세티 프리미어와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등의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라이선스를 확보하지 못했다.

닉 라일리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이와 관련,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라세티와 마티즈를 해외에서 생산할 경우 라이선스비를 지급할 것"이라면서도 "이는 GM 본사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3일 GM 본사가 GM대우의 4912억원 유상증자에 대한 신주권을 모두 인수하겠다고 밝힌 후 라일리 사장은 태도를 바꿨다.
라일리 사장은 29일 서울에서 열린 한 총회에 참석해 "산업은행과의 협상은 마무리됐다"며 산은의 라이선스 보장 요구에 대해 "다른 해외 사업장의 경우 라이선스의 개별 소유 사례는 없다. GM대우만이 이를 개별 소유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라세티 등 GM대우 핵심모델의 해외 현지생산에 따라 일감이 줄어들게 된 GM대우 공장에 대해서는 "현 시장상황과 자동차산업의 회복세를 감안할 때 내년에는 수익을 낼 수 있다"며 "2011년에는 GM대우의 전체 공장이 풀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달랬다.

이에 대해 GM대우 금속노조 한 관계자는 "GM대우에서 개발한 차량을 해외에서 생산하게 된다면 이는 자국 내 판매로 제한해야 한다는 노조의 입장을 GM 경영진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차량이 타국으로 수출될 경우 생산의 약 90%를 수출에 의존하는 GM대우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올 8월까지 GM대우의 수출량(CKD 포함)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가량 감소했다. 9월 수출량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2.6% 줄었다. 이 같은 감소폭은 GM이 현지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경우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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