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코리아 사무실엔 사장을 비롯 임원실이 따로 없다. 직원들은 사장 눈치보며 일하느라 힘들겠지만,"임원실 크게 만들면 그게 다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돈"이라는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의 소신이 배어 있다. 응접실에도 가운데에 테이블이 없다. 소파만 배열돼 있다.

"소파 옆에 메모할 수 있는 탁자하나씩 두면 얼마나 편해요. 여직원이 차라도 가져올 때면 허리 숙여 내려놔야 하는데 그것도 없앨 수 있고요. " '정우영식 실속'의 사례들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소비자들은 이 색깔을 보고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최종 결정을 내린다. 정 사장은 혼다만의 색깔을 '실속'이란 단어로 강조했다. 모델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에 대해서도, "시장 좌판에 이것저것 많은 물건을 깔아 놓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물건 몇 개만 갖추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 사장은 "일본 본사에서도 판매 모델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혼다코리아는 올해로 한국진출 5년째를 맞았다. 뒤돌아보면 국내 수입차 시장에 남긴 족적이 꽤 화려하다. 누적 기준으로 'CR-V'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다. 하이브리드카를 가장 먼저 국내에 소개한 것도 혼다코리아다. 일반 정비업소와 정비 계약을 맺는 다른 수입 브랜드들과 달리 한국 진출 초기부터 딜러마다 자체 정비소를 운영토록 한 것도 선구적이다.

수입차 시장을 대중의 눈 높이로 낮춘 것 역시 공(功)이다. "어코드를 처음 들여올 때 다들 안 된다고 했어요. 고급 브랜드인 아큐라를 가져와야 한다는 거예요. 가격 거품을 뺀 합리적인 대중 수입차로 승부를 내야겠다고 생각했고,그대로 적중했습니다. 어코드 이후에 국내에도 3000만~4000만원대 수입차가 꽤 늘어났습니다. "

실속과 합리로 무장한 혼다코리아는 지난해 말 가장 큰 위기를 겪었다. 원 · 엔 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입 단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간 것.정 사장은 이 시기를 "죽느냐 사느냐가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던 때"라고 말했다. 출혈 경쟁을 하면 딜러가 죽기 때문에 판매 차량을 대폭 줄였다. 판매 가격도 올렸다.

이 때 가격을 높인 탓에 혼다코리아는 소비자들로부터 뭇매도 받았다. "혼다코리아라는 조직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그 회사에서 물건을 산 소비자도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잦은 가격 조정으로 고객들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사죄합니다. "

2010년형 CR-V와 시빅을 선보이면서 혼다코리아는 이전의 실속 모드로 돌아갔다. 도요타와의 경쟁이 촉발시킨 면도 있지만 혼다만의 색깔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해서다. "혼다코리아는 여전히 적자입니다. 그래도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기에 소비자에게 다시 돌려 주려는 겁니다. " 정 사장의 말에서 혼다코리아가 어려움에서 급속히 빠져 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