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자동차업체들의 '적자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환율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올 3월 이후 미국 달러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향후 생산·판촉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자동차 판매 경쟁력의 핵심인 가격 책정에 있어 환율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車시장, 여전히 가격승부

블룸버그통신은 21일(현지시간) 미국에 거주하는 한 시민이 현대자동차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와 도요타 '캠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뉴욕에 사는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 데이비드 비드니(46)는 지난 7월 새 차를 구입하기 위해 현대차와 도요타 전시장을 찾았다.

현대차 딜러는 비드니에게 "차를 구입하면 3500달러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오래된 중고차를 팔고 연비효율이 개선된 신차를 사면 현금을 지원해주는 미 정부의 '중고차 보상 프로그램' 덕분이다.

비드니는 이어 도요타 전시장을 찾아 한 등급 위의 중형세단 '캠리'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도요타 딜러는 '엘란트라'보다 4500달러 더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

잠시 고민하던 비드니는 차 문을 닫고 현대차를 찾아 엘란트라를 구입했다. 그는 "현대차가 최고의 거래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차량의 구입 기준에 있어 등급, 성능보다도 가격을 가장 우선하는 미국인들의 판단기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환율에 울고 웃은 韓·日 자동차업계

현대차는 올해 미국 시장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실적을 올렸다. 현대차는 올 들어 미국 시장 점유율이 전년보다 1.3% 늘어난 4.4%에 도달했다.

반면 도요타는 여전히 전미 판매량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채산성 악화로 연이은 적자를 기록 중이다.

업계는 현대차 등 한국기업의 선전을 두고 지난 1년여간 급격히 변동한 환율 흐름이 유리하게 작용했던 게 주효했다고 보고 있다.

리처드 제럼 맥쿼리증권 수석연구원은 "최근 1년간 한국 산업은 크게 개선된 실적을 올렸다"면서 "그 배경에는 환율 변동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럼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비교해 보면 한국 업체들의 수익성이 크게 앞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화의 달러대비 가치가 지난 2년여간 최대 약 22% 가까이 떨어지면서 현대차가 한 해 동안 실시한 대규모 판촉 전략의 밑바탕이 됐다. 환차익으로 인해 높아진 채산성과 가격경쟁력이 거대한 자금줄이 된 셈이다.

반면 엔화는 지난 2년여 간 미국, 유럽 등 16개 주요국 통화대비 가치가 크게 오르며 도요타 등 일본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을 악화시켜왔다.

원화대비로 엔화는 지난 2년간 61% 가까이 폭등했다. 20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100엔당 1290원 선으로 마감됐다.



◆달러화 약세 심화…상황은 뒤집힐까?

최근 달러화의 약세가 심화되자 증권업계를 주축으로 한 국내 산업분야 관계자들은 '국내 수출업체들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우후죽순 내놓고 있다.

원화가치가 달러화대비 높아지며 채산성이 악화될 거라는 게 이유다.

이에 대해 현대차 글로벌영업본부 측은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로 내려앉을 경우까지도 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판촉활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 위해, 현대차는 올 한 해 미국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주효했던 '실업보장 프로그램'을 내년까지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소비자가 자동차 구입 1년 이내에 직업을 잃는 등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동차를 되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미식축구경기인 '슈퍼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등 대규모 스포츠 경기에도 후원업체로 나설 계획이다.

일본 경쟁업체들은 달러화 가치의 약세를 기회로 삼겠다는 목표다.

지난 21일 일본 지바에서 개막한 도쿄모터쇼에 참가한 도요타, 혼다, 닛산 등 '빅3'는 일본 내 생산을 줄이고,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려 수익성을 높이려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일제히 밝혔다.

이들은 비용부담이 큰 일본 내 생산을 줄이고, 미국 내 공장에서 주요 차량 생산을 늘려 채산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일본 내 생산 근로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용단'으로 여겨진다.

다카노부 이토 혼다자동차 회장은 "엔화 가치가 장기간 강세를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해외 현지 공장의 생산량을 늘릴 필요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환율변동에 따라 갈려진 한일 수출업체들의 명암이 각국 경기회복의 속도를 좌우하고 있다"고 평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