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금융시장이 유동성 미세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해의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상적 수준으로까지 자금을 공급해야 했으나 이제는 일부 긴급조치들을 중단해도 될 정도로 경제 상황이 호전됐다는 게 미세조정을 시행하고 나선 국가나 지역 중앙은행들의 설명이다.

2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24일 성명에서 금융위기 이후 실시해 온 미국 달러화의 유동성 공급을 위한 조치 중 상대적으로 기간이 긴 84일짜리 긴급 달러화 공급을 다음 달 6일 이후부터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기준금리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 23일 정례회의 이후 모기지채권(MBS)과 정부채권 매입 일정을 내년 1분기까지로 연기하지만 매입 규모는 1조4천500억달러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내놓은 이번 조치들을 과잉 유동성에 대한 본격적 회수, 즉 '출구전략'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유동성의 추가 확대를 중단하거나 늦춘다는 점에서 미세조정에 해당된다고 풀이하고 있다.

대우증권 고유선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금리 인상이라는 전면적인 출구전략 실시는 내년 2분기 이후에나 시행되겠지만 미시적 유동성 흡수는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고, 메리츠증권 조성준 연구원은 FOMC가 "양적 완화 정책 중 일부가 종료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중국에서는 지난달 초 미세조정에 해당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달 6일 발표한 '2009년 2분기 중국화폐정책집행보고'를 통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존의 확장적 통화정책이 변화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세조정으로 간주될 수 있는 조치들이 나왔다.

6조5천억원이던 한국은행의 중소기업 지원용 총액한도대출은 지난해 10월 금융위기를 맞아 9조원으로 늘어난 뒤 지난 3월 1조원이 추가 증액됐으나 그 후에는 별다른 증액없이 연말까지 10조원으로 유지될 전망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이는 유동성 확대 중단이라는 미세조정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도 증권업계에서는 '재정 부문에서의 출구전략'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세계에서 유동성 확장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중단하는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자본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지난달 초 미세조정을 시사했을 때 신규 은행대출 급감과 맞물리며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했고, 결국 상하이종합지수가 8월 한 달간 21.81% 하락했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주형 동양종합금융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번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발표된 입장은 '조만간 금리인상 같은 본격 출구전략이 시행되는 게 아니냐'는 그동안의 의심을 해소할 기준선을 줬다는 점에서 지난달 중국의 사례와는 차이가 크다"며 "당시 중국의 조치가 공포감으로 이어졌다면 이번에는 일종의 안도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세진 기자 smi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