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출구전략의 시행 시기에 대해 어느 정도 명확한 선을 그었다.

적어도 내년 3월 말까지는 출구전략을 시행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조치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Fed의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1조4천5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 채권 매입 시한을 당초 예정된 올해 말에서 내년 1.4분기 말로 늦춘다고 발표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과 같은 국책모기지기관들로부터 매입키로 한 모기지채권의 총 규모는 그대로 유지하되, 매입하는 시기를 늦춤으로써 양적완화를 통한 유동성 공급의 템포를 완만하게 가져가겠다는 방침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당초 계획했던 시점인 연말까지 채권매입을 완료할 경우 시중 공급되는 자금규모가 단기간에 급증, 실세금리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고, 내년 이후에는 다시 Fed의 보유채권이 시중에 매각될 수 있다는 심리로 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소프트랜딩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Fed의 출구전략 타이밍을 시사해주는 것으로도 간주되고 있다.

출구전략은 중앙은행이 그동안 금융위기 수습과 경기부양을 위해 정책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를 통해 무제한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정책을 끝내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양적완화의 중단과 금리인상 등을 통해 시중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다.

이러한 출구전략은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매우 점진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Fed가 그동안 유동성 공급을 위해 매입했던 채권을 시장에 다시 내다팔기 시작하는 것을 출구전략의 출발점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책금리를 제로수준까지 낮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통화정책 수단이 고갈된 Fed는 금융회사와 기업이 보유한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왔다.

이렇게 풀린 자금을 회수하는 절차는 매입한 채권을 다시 내다파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흡수하고 이후 금리인상을 단행하는 수순을 밟거나 채권매각과 금리인상을 동시에 시행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Fed가 1조4천500억달러 규모의 채권매입 완료 시점을 당초 계획했던 올해 말에서 내년 3월 말로 늦춘 것은, 적어도 내년 3월 말까지는 매입 채권을 다시 내다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Fed는 그러나 이미 매입속도를 완화하면서 매입종료 시점을 올해 10월 말로 한 달 늦춰 잡았던 3천억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은 예정대로 10월 말에 끝내기로 했다.

국채매입 규모는 모기지채권 매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장의 충격은 덜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국채매입 중단을 곧바로 출구전략으로의 전환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다.

따라서 Fed의 출구전략은 최소한 내년 봄 이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특히 제로금리 수준인 연방기금금리를 "상당기간에 걸쳐" 계속 묶어두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도 출구전략이 조기에 시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처럼 출구전략의 시기를 늦추려는 것은 경기회복이 탄탄한 궤도에 오를 때까지 경기부양적인 통화정책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Fed는 이날 미국의 경기가 회복을 시작했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경기회복세가 아직은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섣불리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도 시장에 함께 제시한 것이다.

지금 나타나기 시작한 경기회복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7천870억달러의 경기부양책과 Fed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힘입은 것일 뿐, 소비증가→기업매출 확대→투자증가→고용확충→가계소득 증대 등으로 이뤄지는 선순환적인 경기회복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 Fed의 판단이다.

미국 경제가 스스로 지속적인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는 섣부르게 과잉대응(overkilling)하지 않겠다는 것이 Fed의 기본입장으로 이해된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