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최소 13조 원대를 웃도는 국내 기업들의 매각 작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구조조정 등을 위해 공식적으로 매각작업이 진행 중이거나 연내 매각 작업이 개시될 하이닉스반도체와 대우건설, 금호생명, 동부메탈, 대우인터내셔널, 현대종합상사 등의 기업 매각규모는 대략 13조 원대를 웃돌고 있다.

그러나 최근 그룹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물로 나온 일부 기업들은 가격 협상 지연과 마땅한 매수자 부재 등으로 새 주인 찾기에 진통을 겪고 있다.

다만 정부나 은행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인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매각 절차는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며 우리금융 민영화 역시 속도를 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 구조조정 기업 매각 '시들'
작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고 구조조정에 착수한 대기업그룹들은 계열사 매각 작업에 진통을 겪고 있다.

대우건설과 금호생명 매각을 추진 중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대우건설 매각 주간사인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은 오는 29일까지 대우건설[047040] 지분 매각을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받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미국 벡텔과 파슨스,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콜버그크라비스로버트(KKR), 유럽계 사모펀드인 퍼미라(Permira) 등 외국계 기업과 펀드들 중심으로 6~7곳이 대우건설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들 중에서 대우건설 인수에 적극 나서는 곳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이 예상 외로 뜨겁지 않은 편"이라며 "문제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입장에서 가격 협상이 수월하지 않아 원하는 가격에 매각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풋백옵션 행사일인 오는 12월15일 이전까지 대우건설 매각 작업을 매듭지어야 한다.

금호생명 매각작업도 1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칸서스자산운용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계약 시점까지 자금 유치에 실패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달 내 금호생명 매각을 끝낸다는 목표로 칸서스 외에 다른 곳들과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순조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생명이 이달 말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그룹이 추가 자금을 투입해 지급 여력비율을 높여줘야 한다.

동부그룹은 동부메탈 인수를 추진 중인 산업은행과 가격 협상을 벌이던 중에 잠시 협상을 중단했다.

동부그룹은 동부메탈 지분 100%에 대해 최소 7천억 원 이상으로 평가한 반면 산업은행은 4천억원 안팎으로 제시해 양측의 가격 격차는 3천억원 이상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 관계자는 "동부 측이 매각 가격에 대한 이견 등으로 협상을 잠시 중단했으나 아직 협상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다"라며 "동부 측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 과거 천덕꾸러기 기업들 매각 속도 내나
채권단이 보유한 기업이나 정부가 소유한 기업들의 매각 작업은 상대적으로 속도를 내는 편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효성이 단독으로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매각절차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이닉스 주식관리협의회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은 당초 계획대로 실사와 가격 협상 등을 거쳐 오는 11월 말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다만, 대상자가 한 곳뿐인 만큼 매각절차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증권업계와 금융계는 효성의 자금 사정 등을 감안할 때 효성이 실제 하이닉스를 인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대종합상사에 대한 매각작업도 최근 재개됐다.

채권단은 지난 15일 운영위원회에서 제한경쟁입찰방식으로 현대상사를 매각하기로 하고 입찰제안서를 발송했다.

채권단은 이달 말까지 인수의향서를 받아 연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키로 했다.

시장에서는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STX과 현대중공업, 사모펀드 등 3~4곳이 현대상사 인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관리공사(캠코)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또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내달 중 대우인터내셔널 매각 작업에 착수키로 했다.

캠코는 내달 중 매각 주간사를 선정해 내년까지 매각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해서는 포스코와 SK, GS, 한화 등의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조기 매각 성공 여부는 3조~4조원대에 달하는 가격 협상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우리금융 민영화도 속도 낼 듯
우리금융의 최대 숙원인 민영화 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가 상승 등으로 민영화 분위기가 무르익은데다 지난 8월 말 공식 출범한 공적자금관리위원회도 민영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예보는 조만간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통해 우리금융의 지분 매각 방안과 일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우리금융의 민영화 작업은 2007년 6월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5%를 매각한 이후 더는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팔성 회장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우리금융의 주가가 많이 올랐다"면서 지금이 민영화 적기임을 강조한 뒤 "정부가 우리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목적은 이미 충분히 달성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보유 중인 우리금융의 지분 73% 가운데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23%, 특히 이 가운데 7%를 먼저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우리금융 주가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4천 원대까지 떨어졌으나 23일 기준 1만6천550원까지 회복했다.

예보는 우리금융의 주가가 1만6천355원 수준이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보의 고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지분을 오래 갖고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시장 상황을 봐서 빨리빨리 팔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조재영 최윤정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