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최근 사퇴하면서 국민연금 운용체계를 개편하려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민연금 운용의 완전한 민간 위탁을 핵심으로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처리될지 정부는 물론 자산운용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21일 보건복지가족부 등에 따르면 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난달 말 당 · 정협의를 통해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중점 입법 과제로 선정하고 법안 통과를 강력히 추진키로 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7월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그해 8월 국회로 넘어갔다. 주된 내용은 국민연금의 운용체계를 완전히 민간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복지부 산하의 비상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 자산운용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 상설위원회로 변경하고,이 위원회 아래 운용을 전담하는 기금운용공사를 새로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기금운용위원회는 복지부 장관(위원장)을 비롯한 정부 측 인사 6명과 사용자 · 근로자 · 가입자 대표 12명,관계 전문가 2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 대표는 한국노총,민주노총,전국공공노조며 가입자 대표에는 참여연대도 포함된다. 관계 전문가 2명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과 한국개발연구원장인 것을 감안하면 민간 전문가는 한 명도 없는 셈이다. 또 운용을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공단 소속으로 돼 있다.

연금은 250조원이나 된다. 정부는 이 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동기가 개입될 경우 투자 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비전문가인 사용자 · 근로자 · 가입자 대표들이 참여하면 수익률도 높아지기 어렵다며 자산 운용을 민간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당은 기금운용위원회를 7명의 민간 전문가들로만 구성하겠다는 개정안의 핵심을 문제삼고 있다. 야당은 "책임성이 떨어지는 민간인들에게 기금운용위원회를 완전히 맡길 수는 없다"며 "사용자 · 근로자 · 가입자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가입자 대표 등이 기금운용위원회의 과반수를 차지하지 않으면 개정안에 계속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은 "운용 손실이 크게 나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며 "완전한 민간 위탁은 가입자의 '연금 주권'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50조 운용권 놓고 주도권 싸움…국민연금 '민간위탁' 1년째 표류
이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간에 운용을 맡기고 사후 관리를 강화하면 된다"고 반박하면서도 기금운용위원회에 정부 측 인사를 넣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법안이 통과되더라고 여 · 야의 절충으로 정부나 가입자 대표 등이 참여하는 것으로 법안이 수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완전한 민간 위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금과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고 수익률 제고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은 총 250조원의 연금 운용권을 놓고 주도권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을 비롯한 사용자 · 근로자 · 가입자 대표 모두가 서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할 경우 또다시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