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쌀이 문제다. 소비는 줄고 풍년이 이어지면서 재고가 역대 최대 규모로 늘 전망이다. 수확기 쌀값 급락 가능성도 우려스럽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쌀 시장 안정을 위해 지난해보다 800억원 많은 2조3000억원의 자금을 풀어 242만t의 쌀을 사들이기로 했지만 근본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8일 국내 쌀 재고가 지난해 말(69만t)보다 13만t 늘어난 82만t에 달한다고 밝혔다. 연간 수확량의 5분의 1 수준이다. 농식품부는 연말까지 재고를 82만t으로 유지한다는 계획이지만 소비 부진을 감안하면 역대 최대 규모인 86만t 이상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쌀 재고가 급증하는 것은 지난해 쌀 수확량이 484만3478t으로 2004년 이후 최대 풍작을 올린 데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의무수입 물량'(TRQ)이 작년 28만6000t에서 올해 30만7000t으로 늘어난 반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2007년 76.9㎏에서 지난해 75.8㎏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쌀 수확량이 465만t으로 평년작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쌀 재고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관리비용만 연간 2500억원 정도 들어간다. 막대한 재고 물량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올해 수확기에 또다시 대규모 물량이 쏟아져 나올 경우 내년 쌀 재고가 100만t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이 같은 재고 부담의 영향으로 시중 쌀값은 지난해 9월 80㎏당 16만2416원에서 올 9월 14만7980원으로 9%가량 하락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에 따라 올해 쌀 수확량(465만t)의 절반이 넘는 242만t을 농협과 민간 종합미곡처리장(RPC) 등을 통해 사들이는 내용의 쌀 수급 안정 대책을 내놨다.

이를 위해 농협,민간 RPC 등에 대한 자금융자 규모를 당초 9184억원에서 1조원으로 800억원가량 더 늘리고 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에 지원하는 구매자금도 지난해와 같은 1조3000억원을 유지하기로 했다. 사실상 정부 돈을 풀어 시중에 넘쳐나는 쌀을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이 쌀 재고 부담을 줄이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매년 쌀 수확량이 450만t 이상을 유지하고 '의무수입 물량'도 2014년까지 매년 2만t가량씩 늘어나는 등 공급은 증가하지만 소비는 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2005~2007년처럼 북한에 40만~50만t의 재고 쌀을 보내지 않는 상황에서 마땅히 쌀 소비를 늘릴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쌀 가공식품 산업 육성과 쌀 시장 개방(조기 관세화) 등으로 재고 물량을 줄이는 방법 외에 묘안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의무적으로 수입하지 않고 시장을 개방하면 관세 등으로 국제 쌀값이 국내보다 비싸 수입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