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이번 정기국회서 개정하자"
윤증현 "위기극복후 내년에 검토하자"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국회에서 한국은행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총재는 한은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반면, 윤 장관은 내년에 처리하자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앞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이 남아 있지만 1년여 이상 논의한 만큼 현실적으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부분은 이번에 처리하고 남겨진 과제는 다음에 논의하자"고 말했다.

이 총재는 "국민경제자문회의 태스크포스(TF) 논의 과정에서 한은 의견을 많이 전달했지만 TF가 정부에 제출한 방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 소위에서 논의된 한은법 개정안이 이번 금융위기에 대응하고 수습하는 데 필요한 것을 다 망라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나름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개정안에 반영될 단독 조사권은 금융회사에 긴급자금이 투입됐거나 투입될 예정일 때 가능한 것으로 안다"며 "재정위 안에 있는 정도의 단독조사라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은법 개정을 통해) 금융안정에 대한 책임이 좀 더 명시적으로 부여된다면 금융불안이 누적된다든가 했을 때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고, 혹시 한은의 자금능력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에도 정부가 미리 짜놓은 판에 사후적으로 참가할 때와는 강도와 속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보공유 및 공동검사 양해각서(MOU)와 관련, 이 총재는 "이미 만들어져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보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새로운 정보를 얻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하루 이틀을 다툴 정도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때는 공조가 기민하고 책임있게 이뤄질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은에 금융기관 단독조사 및 검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은 현시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한은법 개편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 상황에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국제논의가 정돈되고 금융위기 상황이 극복된 이후 충분한 연구검토와 관계기관 논의를 거쳐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중 금융시스템 보완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은법 개정문제를 추진하는 게 낫다"면서 "필요시 국회, 정부, 유관기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구를 구성해 제도개편을 논의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한은법 개정은 글로벌 정합성과 맞출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한은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안되는 시급한 상황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한은법 개정 없이도 공조를 잘해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감기관 입장에서 보면 감독체계가 이원화되면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도 있어 보통 일이 아니므로 금융기관 의견도 반드시 들어봐 달라"고 당부했다.

MOU와 관련, 윤 장관은 "수직적인 사회가 지속되면서 수평적 협조가 잘 안되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며 "MOU는 법률로 할 사안이 아니며 운용의 문제로 귀속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다수의 재정위 의원들은 정부가 내놓은 한은법 개정안 관련 보고서가 시간을 끄는 데 불과하다고 질타하고 여야 간 합의를 통해 한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 의원은 정부가 지난 4월 국회에서의 약속과 달리 한은법 개정에 대한 정부안을 제출하지 않은 점을 문제삼기도 했으며, 일부는 감독체계의 이원화 가능성과 물가안정 및 금융시장안정 목표 간 충돌 등을 사유로 한은법 개정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서병수 기획재정위원장은 재정위 소위에서 TF, 한은, 재정부 입장과 MOU 등을 심사숙고해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결론을 내 전체회의에 재상정해 줄 것을 주문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최현석 기자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