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을 삼성그룹의 새로운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라."

호텔신라에 이어 에버랜드 경영의 핵심축으로 부상한 이부진 전무에게 떨어진 특명이다. 호텔 경영을 통해 쌓은 서비스산업의 노하우를 에버랜드에 쏟아부어 제조업에 치우친 삼성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실제 이 전무는 2001년 호텔신라 경영전략 업무를 담당한 후 회사를 연평균 15%씩 성장시키며 경영 능력을 검증받았다.

이 전무가 에버랜드 경영에 가세함에 따라 에버랜드 외식사업부와 호텔신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아가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한 그룹 서비스사업 구도가 전면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보폭 넓히는 이부진 전무

이 전무는 에버랜드 입성을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초 인사에서는 호텔신라 직원을 에버랜드에 임원으로 보냈고 에버랜드 내에 사무실을 만들어 회사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왔다. 이 전무가 주재하는 에버랜드 경영전략 관련 회의는 때때로 세 시간 넘게 진행된 적이 있을 정도였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얘기다. 특히 올해 초 삼성경제연구소,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 등 각 계열사 핵심 임직원들로 이뤄진 태스크포스(TF)를 구성,에버랜드와 호텔신라의 사업 전반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세계 유수의 테마파크와 리조트 등을 방문하면서 선진 기업들의 성공비결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도 빼놓지 않았다. 과거 호텔신라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할 때 세계적 호텔 체인을 돌며 벤치마킹 대상을 찾던 흐름과 유사하다.

이 전무의 우선 관심은 외식사업 통합 등 호텔신라와의 시너지 효과다. 외식사업 자체로는 사업성과 성장성이 크지 않지만 양사가 갖고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장점들을 통합해 새로운 수종사업을 일굴 수 있다는 판단이다. 외식사업 통합안은 호텔신라가 2004년 '아티제' 브랜드로 제과사업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검토한 사안이다. 하지만 삼성특검 등의 영향으로 각 계열사 간 사업조정 등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면서 통합안은 물밑으로 가라앉은 상태다.

◆경영권 승계구도에 가세

에버랜드는 그동안 레저 · 서비스 업체이면서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는 이유로 자체 사업의 가치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성장 가능성이나 보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부동산 가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는 사실상 그룹의 관심 밖이었다.

지난해 매출 1조7902억원에 영업이익 1783억원을 올렸지만 성장 잠재력에 비춰볼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테마파크 사업은 경쟁사 증가 등으로 2004년 800만명이던 입장객 수가 2008년에도 807만명에 그치는 등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초 그룹 인사를 통해 과거 전략기획실 내 경영진단팀장 출신인 최주현 사장이 신임 사장에 발탁된 것도 경영혁신을 통해 기업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는 그룹 차원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 사장은 취임 이후 강도 높은 사업 구조조정 추진을 통해 경영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따라서 최 사장의 내실경영은 이 전무가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성장전략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이 전무의 에버랜드 경영 참여로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재편 작업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이건희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를 중심으로 논의돼 온 경영권 승계 구도에 이 전무가 본격 가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룹 일각에선 이 전무가 전자-금융 사업군을 제외한 상당 부분의 영역에서 경영 참여폭을 넓혀나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전무는 2007년 삼성석유화학 지분 33%를 인수,최대주주에 올랐다.

김용준/김현예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