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트레이딩을 하면서 단번에 '대박'을 터트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떤 자산에 투자를 하든 손실을 내지 않으면 이익은 저절로 따라 오게 마련입니다. 손실을 내지 않으려면 식상하지만 분산투자가 필요하죠.다양한 자산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은 시황이 어떻게 변해도 효과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

이달 초 삼성증권 CM(캐피털마켓)사업본부장으로 영입된 한정철 전무(45 · 사진)는 "티끌 같은 수익이라도 조금씩 차곡차곡 쌓는 게 중요하다"면서 "큰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높은 수익률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으로 옮겨오기 전 우리투자증권의 트레이딩사업부를 이끌었던 한 전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한 지난해에도 1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는 내공을 과시한 고수다. 운용자산이 평균 5000억~6000억원 정도였으니 최악의 투자환경에서도 연 20%에 육박하는 고수익을 거둔 셈이다. 트레이더들의 '로망'이랄 수 있는 수십억원의 성과급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증권맨들 사이에선 부러움과 화제의 대상이다.

한 전무는 "금융위기로 시장이 흔들릴 때 이전에 벌어뒀던 수익을 잘 방어하고 지켜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채권과 파생상품이 전문인 그는 작년 여름 신용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 간의 수익률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만기가 짧은 국공채 등 안전자산의 비중을 늘리는 한편 옵션처럼 변동성을 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미리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 놓은 덕분에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한파가 몰아친 10월엔 주요 증권사들이 수백억원의 손실을 내는 동안 손실액을 수십억원대로 줄일 수 있었다.

해외주식 지수선물 외환 원자재 등 다방면에 능통한 한 전무는 "자산간 가격차와 해당 시점에서의 상대적인 매력도 등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낼 수 있는 자산의 비중을 늘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채권보단 주식쪽 비중을 늘려야 할 때"라며 "급하게 올라온 탓에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는 한 강세장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선진국보다 개도국의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에너지 관련 기업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한 전무는 "국내 증시는 국제 유가 등 상품가격과 상반된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위험을 분산시키는 차원에서도 장기적으로 상품 관련 포지션을 포트폴리오에 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원자재펀드나 국내외 에너지 관련주들이 관심을 끌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다만 내년 상반기에 강한 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금처럼 자산가격이 빠르게 오른다면 각국 정부가 결국엔 '출구전략'을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금 값 상승 원인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배경"이라면서 "인플레이션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에도 '출구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주식이든 상품이든 어떤 자산의 가치가 오를 확률이 높다면 마땅히 투자해야 하지만 기대수익률의 크기에 따라 결론이 달라져야 하고,자신이 세운 논리가 어긋날 때는 가차없이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 전무는 "주가가 오를 확률은 90%여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이 5%도 안된다면 굳이 위험을 질 이유가 없지 않느냐"면서 "반등 기대감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손실을 떠안고 가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기와 주요 자산들 간의 가격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하루 2시간씩 꼬박꼬박 공부한다는 한 전무는 '헛발질'이 계속될 땐 아예 장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후배 트레이더들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가 반복될 땐 휴가를 떠나라고 권고한다. 그는 "투자를 할 땐 여유가 있어야 한다"면서 "쫓기듯 매매하다 보면 손실을 내기 쉽고 여기저기서 생겨나는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라고 강조했다.

글=강지연/사진=허문찬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