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9일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상당'의 제재를 확정할 경우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예금보험공사도 조만간 예보위원회를 열어 황 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릴 예정이다.

황 회장이 금융당국과 예보의 징계에 불복해 법적 대응에 나선다면 지루한 법적 공방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징계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특히 공적자금 투입 기관인 우리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낼 때까지 방관하다가 `사후 징계'에 나선 감독 당국의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는 양상이다.

◇황 회장, 중징계 확정 전망
금융위는 이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금감원의 결정대로 중징계를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2005~2007년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15억8천만 달러를 투자할 때 관련 법규를 위반했고, 여기에 황 회장의 책임이 큰 것으로 판단해 직무정지 상당의 제제를 결정했다.

우리은행은 이후 투자액의 90%인 1조6천200억원의 손실을 봤다.

금융위도 금감원과 마찬가지로 황 회장이 무리한 파생상품 투자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고, 투자과정에서 위험 관리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징계가 확정되면 예보도 우리금융이 지난해 4분기 적자를 내는 등 경영이행약정(MOU)을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릴 예정이다.

예보는 당초 이번 주 중 최고의결기구인 예금보험위원회를 열 것으로 알려졌으나 개최 시기를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당연직 위원인 이승우 예보 사장이 이날 금융위에 참석하기 때문에 금융위 결과를 본 뒤 다음 주 중 예보위를 소집할 것으로 관측된다.

예보도 지난해 4분기 우리금융이 적자를 낸 원인을 황 회장의 파생상품 투자 부실 때문으로 보고 있어 `직무정지 상당'이나 수위가 가장 높은 `해임권고 상당'의 징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예보는 황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융권은 황 회장의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황 회장은 그동안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해 법규를 위반한 적이 없고 금융위기로 발생한 투자 손실은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해온 점을 고려할 때 금융당국과 예보의 징계에 불복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금융당국과 예보로부터 잇단 중징계를 받게 되면 황 회장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로서 평판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황 회장이 명예회복을 위해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감독당국.예보 책임론 부상
감독당국 책임론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낸 데는 감독당국의 감독 소홀도 한몫했다는 주장이다.

2004년 3월~2007년 3월까지 황 회장이 우리은행에 재직했던 때는 금융권이 앞다퉈 대형 투자은행(IB)로의 도약을 꿈꾸며 해외진출과 자산 확대에 열중하던 시기였다.

당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도 국내 은행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해외 진출 뿐 아니라 파생상품 투자 등 IB 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이런 일련의 분위기 속에서 황 회장의 `과감한' 파생상품 투자도 이뤄졌다.

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당국은 이를 방관했고,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특히 금감원은 2007년 6월 우리은행 종합검사 때는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한 법규 위반 내용을 적발하지 못했다가 올해 6월 검사에서는 위험관리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해 `뒷북 제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뒷북 행보를 보이기는 예보도 마찬가지다.

예보는 지난해 4월 열린 예보위에서 우리은행이 파생상품 투자로 손실을 본 것과 관련해 기관주의 조치를 했고, 투자 결정에 관여한 IB 담당 부행장에게는 정직 처분을 했으나 황 회장에게는 성과급 차감 조치만 했다.

무엇보다 예보는 작년 4분기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 규명과 징계 결정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며 1년 가까이 끌어왔고, 금융당국의 징계가 결정된 지금까지 예보위 개최 시기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예보의 `눈치보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당국과 예보가 뒤늦게 징계의 칼날이 빼드는 것을 두고 `표적징계'니 `마녀사냥'이니 하는 말들이 많다"며 "금융권내 `파워게임'과 연결짓는 해석도 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현 정부 들어 `실세'로 분류됐었다.

이에 대해 예보 고위 관계자는 "대주주라고 해서 우리은행 경영에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면 바로 `관치경영' 등의 지적이 나온다"며 "따라서 전문 경영인에 맡겼으면 자율 경영을 인정해주고 그 결과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금융회사의 투자와 관련한 세부적인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는 없다"며 "감독당국의 책임과 황 회장 제재는 구별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2007년 우리은행 검사 때는 과도한 대출에 초점을 맞췄고 당시에는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던 파생상품은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우리은행이 상업은행임에도 황 회장이 재직 당시 지나치게 많이, 그리고 과감하게 파생상품 투자를 했는데도 대주주인 예보가 이를 왜 바로잡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도 "파생상품 시장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고 감독 체계가 미흡한 상태에서 결과적으로 투자 손실이 났다고 해서 담당자를 처벌하는 것은 감독당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밖에 안 된다"며 황 회장을 징계하려면 감독당국도 함께 징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김호준 기자 fusionjc@yna.co.kr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