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개입 의혹 안풀려..테러 위협 상존

1999년 9월 러시아 국민은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그해 9월 4일부터 16일 사이 다게스탄공화국과 모스크바, 로스토프주에서 터진 4건의 아파트 폭탄 테러로 300여 명이 숨지고 2천여 명이 부상했다.

이른바 `검은 9월'로 불리는 4건의 테러는 2차 체첸 전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러시아 당국은 이들 테러가 체첸 반군 지도자의 명령을 받은 카라차예보-체르케시아 공화국 출신의 이슬람 반군의 소행이라며 용의자들을 색출해 단죄했다.

그런데 당시 테러를 둘러싼 진실 게임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크렘린 비판자들은 러시아 보안 당국이 체첸 전쟁을 정당화하고 당시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총리에 오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위상을 높여주기 위해 테러에 깊숙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 타임스는 9일 세계적 남성 패션 잡지인 미국의 `GQ(지큐)' 9월호에 관련 기사가 실리면서 이런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GQ는 이번 달 미국판 최신호에 `푸틴-정계로의 검은 등장'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당시 모스크바 아파트 폭탄 테러 사건에 푸틴이 연루돼 있다는 내용을 실었다.

그런데 미국판 제작 직후 GQ를 소유한 다국적 출판기업 콩데 나스트가 인터넷에서 이 기사를 내리고 러시아는 물론 각 나라 GQ 편집장들에게 이 기사를 자국어로 번역해 게재하지 말도록 조처하면서 러시아 당국이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GQ 편집장은 어떤 검열이나 압력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인권운동가들은 당시 사건 조사위원회 위원들이 잇달아 피살되고 자신의 책에서 당국의 개입설을 주장한 전 FSB 직원이 2006년 런던에서 방사성 물질에 의해 독살을 당한 것도 결코 이런 의혹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국민 상당수도 그런 개연성에 동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브치옴'에 따르면 최근 1천6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2%가 당시 아파트 테러에 당국이 개입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푸틴 전 대통령은 그 테러 사건들에 당국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을 `헛소리'라면서 부인해 왔다.

이런 의혹들이 여전한 가운데 러시아 보안 당국이 지난 5일과 7일 모스크바에서 일어날 뻔한 2건의 테러를 사전에 막은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일간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지난 3일 체첸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테러 용의자가 경찰과 교전 끝에 살해됐는데 그의 몸에서 폭발물과 7일 도착 예정인 모스크바행 기차표가 발견됐다.

또 지난 5일 모스크바 북동쪽에서 폭발물을 운반하던 테러 용의자를 검거했는데 그의 아파트에서 다량의 폭발물이 발견됐다.

한편, 러시아 정부군은 이 아파트 테러 사건들을 계기로 체첸 반군 거점 지역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나섰고 결국 2000년 2월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점령했다.

그러나 반군 잔당들이 체첸 인근 잉구세티야, 다게스탄의 산악지역으로 도망가면서 테러 행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