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영업관련 부서의 A과장은 얼마전 영어로 진행하는 주간 업무회의에서 진땀을 뺐다. 대화 도중 '요청한다(require)'를,'질문한다(inquire)'로 바꿔 말해 취지가 엉뚱하게 전달됐기 때문.이후 A과장은 한동안 놀림을 받아야 했다. 반면 미국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B사원은 회의시간만 되면 단연 돋보인다. 선배들이 매주 회의 전,본인들이 할 얘기를 미리 B씨에게 확인받으려고 줄을 설 정도다.

SK에너지 임직원들이 '영어 삼매경'에 빠졌다. 지난달부터 회사 측이 매주 열리는 팀별 주간업무 공유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도록 권고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외국인 직원이 근무하거나 해외 거래처와 접촉이 잦은 부서는 물론,영어와 크게 관련 없는 부서에서도 영어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회의 때만 아니라 일상 대화를 영어로 나누는 부서까지 등장했다.

이렇다 보니 개별적으로 사설 학원에 등록해 토익 대비반,CNN듣기 과정 등을 수강하는 직원들도 상당수다. 구자영 사장이 '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의 도약'을 강조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회사 관계자는 "영어회의 확산 움직임에 대비해 일과가 끝난 뒤 학원으로 달려 가는 임직원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회사 측도 서울 서린동 본사에 전용 강의실을 마련해주고 외국인 강사를 직접 채용하는 등 임직원들의 영어 말하기 능력을 높여주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인 1조로 업무시간을 활용,30분간 외국인과 비즈니스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실용영어 중심으로 대화하도록 한 '인텐시브 비즈니스 영어'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바쁜 업무로 시간을 내지 못하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10명이 한 반으로 구성된 비즈니스 영어수업을 출근 시간 전후 운영하거나 전화영어 강좌를 지원하기도 한다.

SK에너지는 앞으로 팀별 영어회의 실행 여부를 부서별 평가에 활용하고,사내 IT전산망인 인트라넷에서도 영어를 공용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모든 업무가 영어로 이뤄질 수 있도록 임직원들을 '바이링구얼(bilingual · 이중언어 구사자)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