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M 비난 여론에 의원들 규제안 발의 봇물
정부는 난색.."시장원칙 어긋나 분쟁 소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커지면서 SSM 규제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유통산업발전법,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신설할 것을 제안하며 지역상인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 법안이 시장경제 및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나 국제적 분쟁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SSM 규제 법제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 쏟아지는 SSM 규제법안 발의


20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이 발의해 현재 관련 상임위원회인 지식경제위원회 등에 계류 중인 SSM 규제법안은 모두 15건에 달한다.

이중 SSM 규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10건으로 가장 많다.

민주당도 이 법률의 개정안을 당론으로 내세웠다.

이용섭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당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 현행 신고제의 허가제 전환 ▲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 영업시간ㆍ휴업일수ㆍ영업품목 규제 등이다.

현재 SSM은 국세청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개점할 수 있는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다.

개정안은 이를 허가제로 바꿔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SSM 허가권을 갖도록 했다.

지자체장이 허가권을 가지면 SSM 출점은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개정안처럼 재래시장이나 기존 상권을 `전통상업보전구역'으로 지정해 인근에 SSM 허가를 제한하면 신규 SSM이 설 땅은 무척 좁아진다.

이 개정안은 또 지자체장이 유통영향평가를 거쳐 SSM의 영업품목, 영업시간, 휴업일수 등을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골목 상권'을 지키기 위해 SSM의 손발을 묶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밖에 다른 의원들이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대부분 허가제 전환이나 영업활동 규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나라당의 김영선 의원 등 15인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한 SSM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상위 3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 대형 유통업체 3사의 점유율은 이 기준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김 의원의 개정안은 유통산업의 경우 상위 3개사 시장점유율이 60% 이상이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여겨 신규점포 개설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SSM 규제를 위한 특별 조치인 셈이다.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에서는 대기업의 사업 확장으로 경영을 위협받는 중소기업이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중소기업청이 대기업에 사업의 일시적 정지를 권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권고할 수 있다'를 `권고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으로 바꿔 중소기업의 사업조정 신청에 큰 힘을 실어줬다고 할 수 있다.

◇ 정부 난색에 법제화 험로 예고

의원들의 SSM 규제 법제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정작 정부 관련 부처에서는 일부 규제안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골목 상권을 지키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괜찮지만 대기업에 대한 무리한 차별적 조항을 집어넣을 경우 헌법에 보장된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 기업에 의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WTO는 전 세계 자유무역의 확산을 위해 `시장접근 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주요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는 특정 시장에 기업이 진출할 때 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으로 자유경쟁을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상당수 의원들이 발의한 규제안은 SSM의 지역상권 진출을 해당 지자체가 직접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 원칙에 어긋난다고 정부는 지적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국내에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이 SSM 규제안을 문제삼아 WTO에 제소할 수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규제안을 추진하는 의원들은 정부가 너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WTO도 공공복리 등을 위해 각 나라의 형편에 맞는 예외 규정을 두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정부가 WTO 원칙만을 운운하며 SSM 규제에 소극적인 것은 대기업 비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규제안을 발의한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WTO에 가기만 하면 패소할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적용하면 WTO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SSM 규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