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세계 조명기구 1위 업체인 필립스.이 회사의 네덜란드 본사 및 전 세계 지사의 조명사업부에는 그린 마케팅 담당자가 따로 있다. 에너지 절감형 제품을 확산시키기 위한 각종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필립스는 비정부 기구(NGO) 등과 함께 1970년대 이전에 개발된 가정용 백열전구 및 가로등과 같은 저효율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 등 및 코스모폴리스 등(메탈등)의 에너지 절감형 제품으로 교체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힘입어 필립스는 지난해 조명기구중 53%를 친환경 제품으로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사례2.미국의 옷걸이 제조업체 행어네트워크는 플라스틱 병뚜껑과 종이를 재활용한 친환경 옷걸이를 만들어 3만5000여개 세탁소에 배포했다. 이 옷걸이의 특징은 단기간 내 분해가 가능하다는 점.분해되는 데 100년 걸리는 기존 철사 옷걸이와는 다르다. 제작과 배포 비용은 옷걸이에 새겨진 기업 광고로 간단히 해결했다. 전략적인 그린 마케팅을 통해 돈 한푼 안 들이고 세탁소와 소비자로부터 호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녹색경제 시대의 개막에 맞춰 그린 마케팅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단순히 환경보호 캠페인이 아니다.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한편 실질적인 수익 증대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업 호감도,수익성 개선효과 뚜렷

그린 마케팅은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기업 이미지를 확립해 소비자들에게 친근감을 유발하는 전략이다. 소비자가 가져 온 중고 운동화를 재가공해서 운동장 트랙이나 놀이터 바닥재를 만든 뒤 지역 사회에 기부하는 나이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무용품 생산업체인 3M은 1980년대부터 생산 과정의 환경 오염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2700여 가지 환경개선 프로그램도 추진했다. 결과는 고무적.오염도를 절반 이상 줄이는 데 성공했다. 5억달러 상당의 비용절감 효과도 거뒀다. 이 회사는 또 친환경 경영으로 얻은 탄소 배출권을 매각하지 않고 각국 정부에 반납,큰 호응을 얻었다.

그린 마케팅은 당초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실질적으로 판매를 촉진하는 효과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린 마케팅은 일상생활에서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는 '그린 쇼퍼(green shopper)'가 늘어나면서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그린'만 팔겠다는 전략은 오산

국내에 그린 마케팅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우리 강산 푸르게,푸르게'라는 캠페인으로 잘 알려진 유한킴벌리와 업계 최초로 환경 헌장을 선포한 한솔제지 등을 대표 주자로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등이 대대적으로 녹색경영 방침을 선포하는 등 대기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표방하는 그린 마케팅은 아직까지 환경보호 캠페인과 환경보고서 발간 등 특정 활동에 국한돼 있다. 제품 기획 단계를 포함해 생산 및 유통 전 과정을 관통하는 일관된 전략과 실행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비용 문제도 걸림돌이다. 딜로이트컨설팅 분석에 따르면 그린 라벨을 새로 부착하거나 녹색 제품을 재설계할 경우 생산 비용은 1~3% 정도 증가한다. 지속적으로 원가 절감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린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효과적일까.

전문가들은 '그린'만을 팔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친환경 제품이라고 해도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디자인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CNW마케팅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카인 프리우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나를 표현해 주기 때문'(57%)이었다. '연비가 저렴해서'라고 답한 응답자는 36%에 그쳤다. 단순히 연비가 좋다고 프리우스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비용 부담을 떨치려는 자세도 중요하다. 잘만 하면 그린 마케팅을 통해 '보이지 않는' 반대 급부도 창출할 수 있다. 월마트의 존 플레밍 최고제품책임자(CMO)는 "생산 및 유통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포장재를 줄이면 비용은 결국 내려갈 수 있다"며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판매 전략이 궁극적으로 보다 나은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인 에너지 절감 수치 제시해야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그린 마케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다. 예컨대 친환경 제품을 사용할 경우 연간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지,또 얼마나 환경보호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개별 제품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과학적으로 측정,소비자에게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는 영국의 탄소 라벨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의 조사기관인 포플러스가 최근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9%가 '탄소 라벨이 구매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 P&G는 찬물에 녹는 친환경 세제를 출시하면서 "이 제품을 사용하면 연간 63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며 사용 효과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파나소닉도 '새로 출시된 세탁기가 유사 모델에 비해 소모 전력을 70% 줄이고 1회 사용 때 물 소비량을 89ℓ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보를 설명했다.

개인의 소비가 어떤 방식으로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노키아는 폐(廢) 휴대폰 1대를 수거할 때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운동을 펼쳤다. 고객 스스로를 변화의 주체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결국 그린 마케팅은 단순히 브랜드나 이미지와 관련된 활동이 아니라 제품 기획,조달,생산,물류 및 최종 고객 서비스 단계를 아우르는 총체적 경영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업 전체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이정선 기자/이헌 딜로이트안진 이사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