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불황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가격을 낮춘 타이어를 출시해야 할 때입니다. "

"실패할 경우 저가 이미지만 남긴 채 자칫 회사 브랜드 가치만 깎아 먹을 수 있습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

리먼브러더스 사태 발생 직후인 작년 10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타이어빌딩 내 한 회의실.이 회사 국내 마케팅 · 영업본부 소속 임직원 10여명이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주제는 과연 국내 시장에 저가형 타이어를 론칭해야 할지 여부였다.

회의를 주재하던 박철구 국내 마케팅 · 영업담당 상무(사진 · 55)가 장고 끝에 결론을 내렸다. "출시해 봅시다. 성공할지,실패할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객 만족 극대화'라는 원칙을 상기합시다. 불황기에는 값이 싼 제품군을 추가해 선택권을 넓혀 주는 것이 소비자를 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박 상무는 이 때부터 기존 제품보다 가격은 싸되 성능은 같은 타이어 출시 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개발기간 등을 감안,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수출제품 중 국내 도로 조건 등에 적합한 타이어를 발굴해 내수용으로 돌리는 방안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회사 임직원부터 대리점 사장에 이르기까지 거센 반발이 제기됐다. 박 상무는 "필사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내수 1위 기업으로서 갖고 있는 프리미엄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등의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는 임직원들에게는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생산직 등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저가형 타이어 출시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값 싼 타이어를 팔면 판매 마진이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대리점 사장들에게는 세계 1위 타이어업체인 브리지스톤의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졌던 1990년대 브리지스톤은 저가형 타이어인 '스니커'를 시판,급감하던 판매를 증가세로 돌려놨다. 결과적으로 판매상들도 이익을 얻었다. 이 사례를 전하자 대리점 사장들도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박 상무는 지난 3월 기존 표준장착(OE)제품보다 10% 정도 가격을 낮춘 '스마트 타이어'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스마트 타이어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 매달 평균 4만개씩 팔리고 있다. 상반기 회사 전체 승용차용 타이어 판매량의 10%를 차지했다. 매달 1만5000명씩 신규 고객을 창출하는 부대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박 상무는 실속형 타이어 영업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2일 기존 스마트를 업그레이드한 '스마트 플러스'를 내놨다. 스마트와 달리 스마트 플러스는 처음부터 국내 도로 조건에 최적화하도록 설계한 제품이다. 스마트보다 제동성 · 배수성 · 주행안정성 등을 높이면서도 가격은 같게 유지했다.

박 상무는 올해로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지 31년이 됐다. 신입사원 때 기획 등의 업무를 한 것을 제외하고,24년간 영업이란 외길을 파왔다. 영업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영업은 단지 물건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고객과 신뢰를 쌓는 과정"이라며 "신뢰는 지속적으로 고객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쌓인다"고 했다.

이는 박 상무가 지금도 현장 속으로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도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사무실을 비운다. 전국 37개 지점과 이들이 관리하고 있는 대리점 사장들을 만나 일선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박 상무는 "최근 출시한 스마트 플러스 영업을 더욱 강화해 저가형 시장이 국내에서도 확실히 자리잡도록 하는 동시에 신규로 고급형 타이어도 추가 개발해 제품군을 확대해 나가는 게 중장기 목표"라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