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글로벌 휴대폰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전략 모델 '제트'.지난 6월 나온 이 제품은 출시전에 이미 200만대의 선주문이 들어왔을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전 세계 통신업체들이 애플 아이폰 이후 가장 고대하던 휴대폰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품은 누가 개발하는 것일까. 메가히트는 어떤 경로를 거쳐서 터지는 것일까.

◆ "주말에도 눈이 충혈되도록…"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플랫폼 개발팀의 김주년(41),이시영(37),윤용섭(36) 연구원은 지난 봄 내내 머리를 싸매고 다녔다. "어딘가에서 불필요한 전기가 흐르고 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주변에선 15마이크로암페어(㎂,1㎂는 100만분의 1A) 정도의 누수는 그냥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수백개의 회로 하나하나를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고,우리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습니다. " 김주년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배터리 사용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며칠씩 밤을 새운 적도 많다"며 "휴대폰의 각종 신호 처리와 전류 등을 최적화하는 문제는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제트 개발팀은 품질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양보할 수 없었다. 문제가 발견됐는데 사소하다고 포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제트를 개발하면서 무엇보다 신경을 쓴 것은 디스플레이의 화질.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가 전략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보는 휴대폰'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시영 연구원은 화질을 체크하기 위해 주말에도 집에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데 몰두했다. 이 연구원은 "집사람이 놀고 있는 것으로 오해해 핀잔도 많이 줬다"며 "제트를 개발하면서 본 영화만 200편이 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만화 액션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눈이 충혈되도록 휴대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는 "낮에 볼 때와 밤에 볼 때 달라지는 색감을 교정하고,TV 화질을 담당하는 영상 디스플레이 사업부와도 끊임없이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기존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휴대폰보다 4배 이상 선명한 WVGA(800×480화소)급 AMOLED 화면을 장착한 제트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핸드폰 요리사"

제품을 개발하면서 만만치 않았던 작업은 보안 유지였다. 윤용섭 연구원은 "해외에서 전파 테스트를 할 때도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곳만 찾아 다녔다"며 "'런치박스'라고 하는 네모난 상자를 씌우고 다니는 것은 필수였다"고 강조했다. 제트는 지난 6월 글로벌 출시 행사에 앞서 '티저(호기심 자극) 사이트'만 열어 둔 채 성능이나 사양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X-레이로 찍은 사진만 공개했었다.

이들이 말하는 제트의 주요 강점 가운데 하나는 속도다. 제트에는 일반 휴대폰에 탑재하는 모뎀칩(통신칩) 외에 카메라,동영상 등과 관련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구동을 위한 800메가헤르츠(㎒) 중앙처리장치(CPU)를 장착했다. 김 연구원은 "한마디로 두 개의 두뇌를 가진 제품"이라며 "일반 휴대폰이지만 데이터 처리 속도는 지금까지 나온 휴대폰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제트를 개발하게 된 것은 지난해 인기 스마트폰 '옴니아'를 만든 인연 덕분이다. 김 연구원은 "회사에서 옴니아를 개발한 경험을 살려 깜짝 놀랄 만한 휴대폰을 하나 더 만들라는 임무를 줬다"며 "한 손가락으로 사진 동영상 웹페이지 등을 키우고 줄일 수 있는 '원 핑거 줌' 기능은 제트에 처음 들어간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리사들이 각종 재료를 모아 음식을 만들 듯 휴대폰 개발팀도 각종 부품을 모아 제 기능을 하도록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우리는 휴대폰을 만드는 요리사"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2001년 국내 최초의 컬러 휴대폰 'SCH-X210'을 개발하며 회사의 주목을 받은 이후 고급 휴대폰 시리즈인 '울트라 에디션',800만 화소 카메라폰인 '이노베이트' 등을 개발해 왔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