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세계 6위 수준으로 국가 경제규모에 비해 많은 편이지만 국내외 경제 분석기관의 기대 수준에는 못 미치는 편이다.

특히 작년 하반기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하루에 최고 17%나 출렁거리고 환율을 방어하고자 해도 외환보유액이 소진될까봐 개입하지도 못한 경험을 되새기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3천억달러 수준은 돼야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외환보유액은 무조건 많다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적정 수준에 대한 논란은 늘 있어왔지만 정부 내부에서는 지금보다는 더 많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최근의 경상수지 흑자와 시장상황 개선을 틈탄 보유액 확충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97년말 11.4배 수준..적정보유액은 항상 논란거리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7년 말 외환위기였다.

단기유동성 부족으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던 악몽 때문에 외환보유액은 위기 대응을 위한 안전핀처럼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저 호황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던 1988년 말 123억 달러로 처음 100억 달러를 돌파했고, 1993년 200억 달러, 1995년 말 300억 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1996년 말 340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듬해 들이닥친 동남아 외환위기의 영향 탓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했던 투자금을 빼가고 대출금까지 회수하면서 외환보유액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1997년 12월 외환보유액은 한때 39억 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으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는 피했다.

이후 정부는 위기 발생시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장치로서 외환보유액을 꾸준히 늘려 외환위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말 보유액은 520억 달러로 증가했고, 2001년 말에는 1천28억 달러로 1천억 달러 선을 돌파했다.

2001년 8월23일에는 IMF 구제금융 195억 달러를 조기상환해 IMF 관리체제에서도 졸업했다.

외환보유액은 2002년 말 1천214억 달러, 2003년 말 1천553억 달러, 2004년 말 1천990억 달러로 늘다가 2005년 말 2천103억 달러로 2천억 달러를 넘어섰고, 이후에도 2006년 말 2천389억 달러, 2007년 말 2천622억 달러로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후 외국인의 투자대금 회수 등으로 인해 외환보유액은 작년말 기준 2천12억 달러로 60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들었다가 6월 말 현재 2천317억 달러로 회복한 상태다.

이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97년 말(204억 달러)의 11.4배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적정보유액은 수차례 논란의 대상이 됐다.

2001년 외환보유액이 1천억 달러를 넘어섰을 때는 과다 여부가 논쟁거리가 됐다.

지나치게 많은 외환을 보유하면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통화정책상 부작용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론이 대표적이었지만 위기를 대비해 보유액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2003년 말 1천500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또다시 외환보유액 급증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환율 안정을 위한 통화안정증권 발행이 증가함에 따라 이자비용이 급증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2005년 2천억 달러를 넘어선 후에는 과다 논란보다는 외환보유액 운용을 통한 수익성 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이 때부터 정부채 중심의 전통적 외환보유액이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정부기관채, 자산유동화채, 회사채 등으로 다변화됐다.

작년의 경우 3월 2천638억 달러로 정점을 이뤘으나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상승이 가속화되자 환율안정을 위해 보유외환을 푼데다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보유액이 더욱 줄었다.

◇"외환 3천억 달러는 돼야"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 일각에서는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 3천억 달러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시장 안정시기에는 보유액 규모를 놓고 '크다', '작다', 말들이 분분하지만 한번 위기가 발생하면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 특성상 위험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낄 수 있고 이전까지 충분하다고 여기던 금액도 별 도움이 안될 정도로 작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말과 올해 초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자 시장에서는 세계 6위의 보유액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용 외환보유액이 얼마 되지 않으며 정부에서 부풀려 발표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설명자료를 내면서 "외환보유액은 전액 사용할 수 있는 외화자산으로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국내은행 해외점포에 대한 예탁금처럼 유동성이 묶여 있는 자산은 없다"고 적극 해명해야 했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금융위기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정부로서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확충하거나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국가간 통화스와프를 튼튼하게 맺어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물론 외환보유액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도 대외적으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시장에서 달러화를 사들여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면 환율조작국 오명을 쓸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환율규제를 완화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렇다고 통안증권을 발행해 보유액을 늘리는 것도 이자 부담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안 그래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지출 때문에 재정건전성이 도마 위에 오른 마당에 막대한 이자를 물어가면서 훗날을 대비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는 그러나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하는 등 호조를 보이는데다 은행들이 차입 외환을 순조롭게 상환하는 등 시장 분위기도 계속 좋아지고 있어 이런 추세로 갈 경우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주종국 류지복 심재훈 기자 satw@yna.co.krpresident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