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green)'이 생활을 바꾸고 있다. 가정생활도,소비생활도,운송수단도 변화시키고 있다. 개별 가정만이 아니다. 동네가 바뀌고,대도시가 변모하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굴뚝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조차 '녹색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물론 잘 실감나지 않는다. 먼나라 이야기 같다. 그렇지만 독일 일본 미국 등에서는 이미 '실제 상황'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발표한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는 녹색의 미래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계획이 너무 앞섰을 수도,실천이 안 될 수도 있다. 아직은 턱없이 비싼 '그린 홈'을 갖거나 그린 에너지를 사용하려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5년 뒤 녹색 혁명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을 토대로 알아본다.


그린홈


전기료·가스요금이 '제로'… 지열로 냉·난방까지

대기업 임원인 A씨의 집은 경기도 판교의 단독주택이다. 지붕에 태양광 전지판이 붙어 있는 것을 제외하곤 다른 집과 비슷해 보이지만,찬찬히 뜯어 보면 다른 게 많다. 우선 전기료나 가스요금,쓰레기 처리 비용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 한국전력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자체적으로 생산해 쓰고 남은 전기를 판 대가다.

A씨 집의 주된 전력은 태양광이다. 일조량이 좋은 날 태양광을 통해 생산한 전기는 쓰고도 남는다. 남은 전력은 배터리에 충전된다. 장마철에 대비해 기존 한전의 전력선을 그대로 사용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수소를 이용한 연료전지가 비치돼 있어 1년 중 한전의 전기를 사서 쓰는 날은 별로 없다.

A씨 가족의 전기 사용량도 예전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물을 데울 때나 냉 · 난방은 땅속 150m에 설치한 지열 에너지 시스템을 사용한다. 유리는 3중으로 돼 있다. 벽도 새로 만들어진 단열재로 채웠다. 냉 · 난방을 굳이 하지 않아도 견딜 정도다. 조명은 전기가 덜 먹는 LED(발광다이오드)로 돼 있다.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백열 전등은 없다. 화장실 등에는 자연채광 시스템을 설치했다.

앞으로 5년 뒤 다가올 '그린 홈'의 모습이다. 경기도 과천 국립과학관 한 쪽에 들어선 '그린 홈 제로에너지 하우스'에 가면 이런 모습을 체감할 수 있다. 그린 홈 제로에너지 하우스는 현존하는 기술을 모두 동원해 만든 모델하우스다. 태양광 지열 연료전지 풍력 신소재로 만든 단열재 등 없는 게 없다. 이런 하우스를 당장 본격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건설비가 너무 비싸다.

그렇지만 단계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높다. 오는 2020년까지 그린 홈 100만호를 공급할 예정인 정부에서 설치 비용의 상당액을 지원해주고 있어서다. 김대룡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 보급확산실장은 "정부는 그린 홈 건설에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고 있다"며 "개인이 500만~1000만원 정도 부담하면 현재 사용하는 에너지의 70~80%를 신 ·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독주택만이 아니다. '그린 아파트'도 현실화하고 있다. 대림산업이 지난달 성공적으로 분양한 신당동 e-편한세상 아파트(737세대)는 냉 · 난방 에너지를 평균 40% 절감할 수 있다. 단지 내에는 태양광 발전 시스템,태양열 급탕 시스템,지열 시스템,풍력 발전 시스템 등 신 · 재생에너지 공급장치를 설치한다. 이 아파트는 3년 뒤 완공된다. 그린 홈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는 얘기다.




그린 교통·유통

주유소 자리가 전기충전소로… "전력낭비 백열등은 안팔아요"

A씨는 경기도 판교에서 서울 양재동까지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연료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전기를 충전해 쓰는 전기자동차이기 때문이다. 구입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A씨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다. 집에서 한 번 충전하는 것만으로 출퇴근이 거뜬해서다. A씨의 아들인 B씨는 성남에 있는 대학까지 15㎞가량을 자전거로 통학한다. 정부의 전국 자전거도로 네트워크 사업이 2010년부터 본격화하면서 수도권에 광역 자전거 도로망이 상당부분 구축된 덕분이다. 자전거 주차장이 대폭 늘어나고 전철이나 버스에도 손쉽게 자전거를 실을 수 있어 B씨 친구들 대부분은 자전거로 통학한다.

B씨가 학교에 도착해 보니 에너지 절약에 따른 단과대별 환급액이 공고돼 있다. 전력과 물을 아끼면 감축비의 일정 부분을 환급해주는 탄소포인트 제도 덕택이다. 지난 두 달간의 노력으로 A씨가 속한 단과대는 약 70만원의 혜택을 본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폐자원을 활용한 신 · 재생에너지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고 있다. 이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 병원과 공공기관 등도 신 ·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2009년 2.7%였던 신 · 재생에너지 보급률은 4%까지 높아졌다. 에너지 자립도는 45%까지 올라갔다. 학교의 조명기구는 모두 친환경 절전형 조명으로 바귀었다. 전력 낭비의 대명사로 꼽히던 백열등은 판매조차 안 한다.

A씨와 B씨의 생활은 5~6년 뒤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모습이다. 녹색성장 정책의 변화를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분야는 교통과 유통이다. 도로와 각종 편의시설 확충으로 자전거의 교통분담률은 2009년 1.5%에서 2012년에는 5%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4대강 정비사업이 2012년 완료되면 하천 제방에도 1728㎞의 자전거길이 생긴다. 전국의 버스들은 90% 이상 CNG(천연가스)버스로 바뀐다. 대도시에는 전기버스가 들어선다. 전기자동차도 보급되기 시작해 상당수 주유소 자리에 전기충전소가 자리잡을 전망이다.

유통 분야도 변화가 심할 전망이다. 친환경 상품을 파는 그린 스토어는 2013년까지 500곳으로 늘어난다. 제품별로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표기하는 탄소 라벨링도 확대된다. 친환경 제품 구입에 따른 탄소포인트와 탄소캐시백 제도도 활성화된다. 시민들은 물건을 고를 때 탄소 라벨링을 우선 따진다.

그린경영

탄소배출량이 기업제품 경쟁력 결정

'우리는 탄소배출량이 제로(0)인 탄소 중립(carbon neutral) 제품만을 생산합니다. '

A씨가 퇴근 후 TV를 켰더니 이런 광고 문구가 흘러나온다. 세계시장을 좌우하는 전자업체 광고다. TV나 핸드폰,냉장고 등을 만들 때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기업이라는 의미다. 곧이어 나오는 광고는 이동식 탄화쓰레기 처리장치로 업계를 평정한 C사.김치냉장고만한 탄화장치에 쓰레기를 집어넣자 조그만 알맹이만 남는다. 음식물 쓰레기는 사료로 변모한다. 이번에 가정용 탄화쓰레기 처리장치를 만들었으니 사달라는 게 광고의 골자다.

녹색 혁명으로 판도 변화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것은 기업이다. 세계 각국에서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친환경 녹색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기업들은 탄소 배출량 감축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탄소 배출량이 제품 생산과 구매의 주요 기준이 되는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얘기다.

이런 변화의 움직임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영국 최대 유통업체인 테스코는 2007년부터 세제 오렌지주스 감자 전구 의류 등 20여개 제품에 탄소 라벨을 표시하고 있다. 탄소 라벨에는 각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즉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이 표시돼 있다. 소비자가 친환경 제품을 선택해 구매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정책이다. 일본 최대 화학회사인 미쓰비시화학은 최근 화학업계 처음으로 올해 안에 자사가 생산하는 모든 화학제품에 탄소 라벨을 붙이기로 결정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탄소 관세(green customs) 부과 움직임도 나타난다. 탄소 관세가 현실화하면 기존 생산 방식을 고수하는 기업들이 설자리를 잃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굴뚝기업들이 녹색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는 이유다.

새로운 사업 기회가 무궁무진해질 것도 분명하다. 이동식 탄화쓰레기 처리장치는 이미 일본 기타큐슈에서 시험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도시의 쓰레기 배출량은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다. 탄화장치가 일반화할 경우 이를 개발한 기업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지금까지도 많다. 존디어는 세계적인 트랙터 제조업체다. 농부들에게 트랙터를 공급하던 이 회사는 2007년부터 풍력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농부들의 조합과 제휴를 맺고 풍력발전 사업을 벌여 전기를 공급하는 혁신적인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30년 전 풍력사업을 시작해 세계 풍력시장을 평정한 덴마크의 베스타스도 앞서 녹색 시대를 준비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특별취재팀=하영춘 산업부 차장(팀장),장진모 정치부 차장,양준영 · 이정선 · 이정호 산업부 기자,고경봉 사회부 기자,류시훈 경제부 기자,김동욱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