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은 최근 직원들의 점심시간을 두 시간으로 늘렸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크런치 타임(crunch time)'을 도입한 것.'크런치'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와 런치(lunch)를 합친 말이다. 점심시간을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충전하는 시간으로 만들라는 얘기다.

삼성그룹이 '크리에이티브(창의)'와 '커뮤니케이션(소통)'을 앞세워 창조경영 구현을 위한 '인프라' 깔기에 한창이다. 관리 중심의 중앙집권적 기업문화가 퇴조하는 대신 자율 · 창의 · 혁신을 모토로 하는 다양한 제도와 새로운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자율 출퇴근제,자율 복장을 도입한 데 이어 사보와 사내방송 시스템을 쌍방향으로 바꿨다. 보고서 작성과 회의 문화도 혁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정기 회의를 아예 없애버린 회사도 등장했다. 삼성 주변에서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강조해 온 '창조경영'의 기반을 계열사별로 차근차근 다지고 있는 단계"로 보고 있다.

제일기획의 실험

제일기획 임직원들은 크런치 타임을 이용해 사내에 마련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팀 단위로 대학가에 나가 소비자들의 패턴을 살펴보기도 하고,창의성 제고에 도움이 될 만한 전시회를 찾기도 한다.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은 "최고의 아이디어와 최고의 창의적 결과를 제공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제일기획은 개방형 프로젝트 참여제도 도입했다. 팀 소속에 관계없이 관심있는 주요 프로젝트에 누구라도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광고주별로 강력한 칸막이가 있어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참여할 수 없었다. 또 연봉을 포함한 보상체계도 직급이 아닌 아이디어의 수준에 따라 이뤄지도록 개편했다. 그룹 차원에서 창조적 기업문화를 위해 도입한 자율 근무제와 복장 자율화의 연장선상이라는 설명이다.

회의문화 · 커뮤니케이션도 '틀' 깬다

삼성네트웍스는 창조적 기업문화를 갉아먹는 회의문화 개혁에 나섰다. 주간,월간으로 진행해오던 정례 회의를 통째로 없애버리고 필요할 때만 회의를 하기로 했다. 관성적 회의로 인한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서다.

그룹 차원에서도 회의문화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은 최근 사내방송을 통해 전 계열사에 다섯 가지 회의 원칙을 제시했다. 단순한 정보공유와 보고성 회의를 금지하고,회의에 의사결정권자를 참여시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지정된 상석(上席)을 없애고,참석자 모두에게 존칭을 사용하고 회의는 전문 사회자 수준에 있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진행할 것도 주문했다.

삼성은 회의문화 혁신사례로 삼성화재를 꼽고 있다.

이 회사 회의실에는 의자가 없다. 스탠딩 회의가 집중력이 높고 빨리 끝날 수 있어서다. 회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디지털 알람시계도 놓여 있다. 회의실 예약은 30분 단위로 하도록 했다. 삼성은 이날 그룹 차원의 새로운 사보 '삼성 앤 유(samsung & u)'를 발간,직원들뿐 아니라 삼성그룹 홈페이지에 등록한 외부 인사들에게도 발송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