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경제권인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글로벌 FTA의 '허브'로 부상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에 이어 EU와의 FTA가 발효하면 우리 경제는 도약의 발판을 사방으로 넓히고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뛰어넘을 디딤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EU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판매고와 이익을 올리고 소비자들은 EU제품을 보다 싼 값에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가 연내 통과를 목표로 잡은 바 있는 국회 비준도 난제지만 피해가 우려되는 농축산업 등 국내 취약산업을 위한 보완대책 마련도 시급한 현안이다.

◇ 세계최대 EU시장 품 안에

EU와 손잡으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FTA 흐름의 주류에 끼었다는 평가다.

1998년 말 다른 나라와 FTA를 추진키로 한 지 10년여만의 성적표다.

우리의 제5교역 상대이자 개도국시장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선진시장인 미국, 브릭스(BRICs) 국가이자 거대 시장인 인도에 이어 세계 최대 경제권인 EU시장까지 외연을 넓히면서 선진국-개도국-신흥국 시장의 조합을 이루게 됐다.

일본과 중국을 뺀 세계 주요시장의 문턱을 사실상 없앤 셈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로서 FTA만이 살 길'이라는 일념으로 속도전을 벌인 결과다.

또 양자무역의 틀인 FTA는 다자무역체제인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정체되고 글로벌 경제위기로 보호무역주의가 꿈틀거리는 상황에서 향후 시장을 넓혀나갈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세계 경제가 회복되는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세계적 위상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보호무역주의 배격에 대한 의지를 과시한 것은 물론이고 EU와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면서 국가 신인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기대다.

◇ 한.미-한.EU FTA로 효과 극대화


EU는 국내총생산(GDP) 세계 1위다.

지난해 우리 교역의 20%를 차지하는 제2 교역 파트너이자 우리 측 무역흑자도 184억 달러로 제일 남는 장사를 해온 시장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규모도 1위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005년 당시 한-EU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서 GDP를 단기적으로 2.02%(15조원), 장기적으로 3.08%(24조원) 끌어올리고 수출도 단기 2.62%(65억달러), 장기 4.47%(110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EU 기업들의 투자가 늘면 고용도 늘어나게 된다.

일본이나 중국 등 경쟁국들보다 먼저 EU와 FTA로 손을 맞잡으면서 상품 경쟁력 향상은 물론 시장 선점효과까지 기대된다.

최낙균 KIEP 선임연구위원은 "한.EU의 경우 한.미 FTA보다 이해 상충이 적고 EU의 경제통합 속도가 빨라 우리에게 동구권 진출 등 기회요인이 많다"고 말했다.

한.미 FTA까지 발효되면 두 개의 선진시장을 확보하면서 시너지도 기대된다.

KIEP는 양대 FTA가 동시 발효될 경우 우리나라의 GDP가 7.6%, 고용도 10만7천~55만명이 각각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선진지역과의 FTA 확대로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글로벌화를 이루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국내 피해업종 대책 관건..국회비준도 과제

FTA는 양자간 균형을 추구하는 만큼 득실이 동시에 발생한다.

관세 철폐나 인하로 상대국 제품들이 싸게 들어오면서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보다 싼값에 EU제품을 살 수 있겠지만 해당 국내 산업의 존립기반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한.EU FTA에서는 농축산업 등의 피해가 클 전망이다.

EU의 낙농제품은 기술과 품질에서, 돼지고기 냉동삼겹살은 가격에서 우리보다 앞선다는 평가다.

세계 최고 수준인 EU의 서비스산업 경쟁력도 우리에게 부담이다.

이 때문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정된 유예기간을 최대한 활용해 정부 지원과 구조조정 등을 통해 취약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비준은 가장 어려운 과제다.

애초 정부는 하반기에 한.EU FTA에 대한 국회 비준을 받아 내년에 발효시킨다는 방침이었지만 협상 타결시점이 당초 목표보다 서너달 늦춰지면서 연내 비준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더욱이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한 상황에서 한.EU 비준동의안까지 상정될 경우 피해업계의 집단 움직임이 거세질 것이라는 점도 정부의 걱정거리이다.

정부는 이 때문에 시장개방의 충격을 완충시킬 보완대책을 검토 중이지만 국내 피해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적지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