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회사들은 요즘 한국전력 발전부문 자회사들이 야속하다. '한전이 어느 나라 회사냐'는 푸념까지 나온다. 해운사들의 불만이 촉발된 것은 지난달 동서발전이 일본 해운회사인 NYK와 석탄 장기 도입계약을 맺으면서부터다.

국내 해운사들도 공개입찰에 참여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가뜩이나 불경기인데 안방에서도 밀리면 우린 어떡하느냐?" 국내 해운사들의 볼멘소리다.

한전 발전 자회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원가 절감은 어느 기업이나 추구하는 기본 목표라는 해명이다. 해운회사 돕자고 비싼 값에 배를 빌리면 전기를 사용하는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이전된다는 것도 방어논리의 하나다.


◆일본 경계령

동서발전은 지난달 17일 일본 해운사 NYK의 한국 현지법인인 'NYK 벌크쉽 코리아'와 10년 장기 운송계약을 맺었다. 국내 해운업체 4곳도 원서를 냈지만 낙방했다. 일본업체에 비해 높은 가격을 써냈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은 연간 수송량 80만t짜리로 수송비용은 560만달러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체 관계자는 "계약금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목을 매고 있는 국내 해운사 입장에서는 의미가 큰 주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해운업계가 장기 운송계약을 외국 선사에 내준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작년엔 서부발전이 벌크선 두 척에 대한 장기수송 사업자로 일본 해운회사인 '케이라인'을 선정했고 2004년엔 동서발전이 호주에서 석탄을 실어오는 계약을 NYK에 넘겨줬다.

7일 예정된 남동발전 공개 입찰에도 일본 해운회사가 참여한다. 국내 해운업체들의 이익단체인 선주협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한전 자회사들이 전체 화물 가운데 10% 이상을 외국 선사에 떼어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해운사 '애국심 마케팅'

국내 해운회사들은 한전 발전 자회사들이 '최저입찰제도'를 고집할 경우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푸념한다. 해운회사들은 장기 운송계약에 사용할 배를 대부분 돈을 빌려 구입한다. 얼마나 싼 값에 대출을 받느냐가 운송료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인 셈.해운사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은 거의 제로금리에 가까운 수준에서 돈을 빌린다"며 "공개입찰을 통해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를 선정하는 관행을 유지하면 앞으로도 국내 해운사들은 계약을 따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역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할 수도 없다. 이진방 선주협회장은 "일본 발전 자회사들은 지명입찰제를 통해 대량화물 운송권을 일본 선사에만 몰아주는 등 한국 해운회사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제철 같은 민간기업도 우리나라 해운회사를 챙기는데 정작 공기업인 발전회사들은 단기적인 이익에만 집착한다"고 꼬집었다.

◆"있을 때 잘하지"

발전 자회사들도 할 말은 많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지난달 입찰에서 국내 해운사와 일본 선사의 입찰 가격 차이는 겨우 t당 30센트에 불과했다"며 "이 정도도 낮추지 못한다면 원가 경쟁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해운회사들에 대한 섭섭함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호황 때 해운회사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서도 국내 화주들에게 해운운임을 받을 만큼 다 받아갔다"며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발전 자회사들은 대놓고 해운사들을 비판하지는 못하고 있다. 해운사들이 '선주협회'를 통해 잇달아 성명서를 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발전회사 관계자는 "모회사인 한국전력이 최근 들어 해운회사 설립을 검토하면서 입장이 애매해졌다"며 "한전 입장에서는 해운사들을 다독여야 해운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상황이라 발전 자회사들이 공식 대응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