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고갈 '째깍 째깍'… OECD "사회적 위기" 경고
미국 조지아주 릴번시에 사는 앨버트 펠리우씨(48)는 요즘 걱정이 태산 같다. 은퇴 후 한 푼 두 푼 저축해왔던 퇴직연금에 의지하려 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주가 폭락으로 연금 평가액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래도 67세까지는 계속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 근로자의 60%가 가입한 확정기여형 은퇴연금 401K의 지난해 손실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산 26%에 이른다.

세계 각국의 연금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고령화로 재원이 점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투자손실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연금 개혁에 나서고 있으나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위기로 직격탄

금융위기는 은퇴 이후 소박하고 편안한 삶을 꿈꿔왔던 소시민의 꿈을 깨트렸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23개국의 민간연금은 무려 5조4000억달러의 손실을 내 자산가치가 23% 쪼그라들었다. 특히 주식 투자 비중이 높은 아일랜드의 민간연금 손실률은 37.5%에 달했다. 호주와 미국도 26%가 넘는 손실을 냈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연금도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일본의 공적연금은 지난해 사상 최악인 9조4015억엔의 적자를 냈다. 손실률은 10.03%다. 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은 -27.1%,네덜란드 ABP -20.2%,캐나다 공적연금도 -14.5%라는 최악의 성적을 냈다.

이에 따라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은 공공연금 지급액을 이미 줄였다. OECD는 "독일과 일본 미국 등에서 노년층의 사회안전망이 우려된다"며 "연금 문제로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사회적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향후 각국 정부가 재정적 그리고 정치적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구통계학적 취약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출생률은 떨어지는 인구통계학적 취약성 때문에 연금제도는 장기적 관점에서 재정적으로 지속불가능한 상황이다. 각국 정부가 공공연금에 쏟아붓는 세금도 갈수록 늘고 있다.
현재 OECD 회원 30개국은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7.2%를 공공연금에 투입하고 있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이 비율이 2050년 15%로 치솟고 일본과 유럽의 일부 고령화 국가들에서는 20%를 훨씬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금 고갈이 정부 재정에 큰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연금은 처음 도입됐을 때 가입자로부터 돈을 걷어 노년층에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식(PAYG)으로 설계됐다. 이는 노년보다 청 · 장년층 인구가 더 많은 피라미드형 인구구조에 적합한 방식으로,은퇴자 1명을 근로자 5명이 부양하던 1980년대에는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이젠 은퇴자 1명을 부양할 근로자가 4명이 됐고 2047년에는 2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2050년에는 부양 근로자 수가 1.2명으로 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연금 수령 나이에는 큰 변화가 없다. 미국에서 연금제도가 처음 도입됐던 1930년대의 평균 기대수명은 62세였으나 현재는 78세로 길어지면서 더 많은 연금이 필요해졌다. 또 조기 은퇴가 일반화하면서 연금 적립기간은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에서는 남성의 연금 수령 나이가 65세인데 실제 은퇴 시기는 평균 59세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