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청탁과 줄대기를 뿌리뽑겠다고 공언한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의 파격적인 인사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23~24일 서울 KEPCO 아카데미(한전 연수원)에서 진행된 1,2직급에 대한 승진심사에 하위 직급도 상위 직급 승진심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바뀐 심사제도가 처음 적용됐다.

한전 관계자는 24일 "차장인 3직급 직원 8명이 첫날 심사위원 60명에 포함돼 상위직을 심사토록 했다"며 "과거 승진심사 때마다 제기된 로비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것"라고 밝혔다.


◆한전 연수원에서는…

이도식 한전 관리본부장(승진심사위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11시께 연수원 행정실에서 60명의 심사위원 명부를 개봉했다. 김 사장의 지시에 따라 전산을 돌려 무작위로 선발한 직원들의 휴대폰과 자택 전화번호가 담겨 있었다. 인사관리부장이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오전 6시까지 서울 연수원으로 오라"고 전달했다. 부정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기 위해 옷을 갈아 입고 이동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만 줬다.

전화를 받은 위원들이 오전 6시께 연수원에 도착하자 감사실 직원과 청원경찰들이 혹시나 있을 부정을 막기 위해 캠코더로 각자 배치된 방까지의 이동 과정을 녹화했다.

심사위원 60명은 각자 방에 설치된 컴퓨터로 3직급(차장)에서 2직급(부장)으로 승진할 후보자 337명을 심사했다. 회사 측은 인터넷이 완전히 차단된 별도 전산시스템으로 업무 실적,경력 사항,포상 · 징계,어학 능력,사내외 교육 현황 등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제공한 뒤 A~E 5개 등급을 매기도록 했다. 휴대폰이 압수된 것은 물론 식사도 연수원 식당에서 방으로 투입됐다. 화장실에 갈 때도 청원경찰과 감사실 직원들이 따라 붙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들에 대한 관리 수준을 방불케 했다.

한전은 전날에도 같은 방식으로 2직급(부장)에서 1직급 '을'(본사 처장,지점장)로 승진할 사무 및 연구직 265명에 대한 심사를 벌였다.


◆심사제도 개편…"로비 청탁 원천 차단"

김 사장 취임 이후 이뤄진 첫 승진심사는 로비와 청탁이 개입할 소지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2007년까지 사장이 심사위원을 선발했지만 이번엔 바뀐 제도에 따라 전산 시스템을 돌려 3급 이상 4500여명 가운데 무작위로 위원을 추출했다. 한전 관계자는 "새로 마련한 승진심사제도는 누가 심사위원이 될지 알 수 없어 로비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전은 이 같은 승진심사 제도 개선과 함께 내 · 외부 청탁,골프 접대,금품 · 향응 수수 등의 행위가 적발되면 승진 자격을 박탈하고 직위해제할 수 있는 징계 규정도 마련했다. 승진 대상자들로부터는 이 같은 방침에 동의한다는 청렴서약서도 받았다.

한전은 이번 심사 결과를 최고 인사기구인 상임인사위원회에서 재검증한 뒤 조만간 승진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