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들에게 근무평가에서 최고 평점을 준다. 파업기간 중에 인사조치를 하려면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 "

일반 민간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단체협약 조항들이다. 하지만 이번 공공기관 인사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은 기업의 단협안에는 이런 불합리 조항들이 버젓이 등장한다.

이번에 최하위 등급을 받은 영화진흥위원회는 노조전임자 수가 정부 기준을 초과했다. 그나마 상급단체에 대한 전임 여부는 규정이 없다. 노조 측이 전임 여부를 알아서 결정한다. 노조 간부에 대한 인사조치도 함부로 못한다. 인사시에는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직원들의 직무와 관련해 징계위원회를 열 때도 반드시 노조위원장이 참석토록 명시하고 있다. 강한섭 영화진흥위원장은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결국 노조의 반발을 넘어서는 데 실패했다. 이로 인해 소통보다는 강경한 자세로 각을 세우는 데 전념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I공사는 노조전임자의 전임종료 후 1년간 근무평가에서 최상위 평점을 부여토록 했다. 근무성적에 관계없이 전임자라는 이유로 고과점수를 올리도록 한 것이다. 조합간부 인사는 노조와 합의하도록 명문화하는 등 인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K정보원은 노사동수로 인사평가제도 개선위원회를 운영토록 단협에 명시했다. 노조 측 동의 없이는 징계나 승진이 불가능한 셈이다. 특히 내부승진 문제는 이 위원회에서 우선적으로 다루도록 했다. 또 다른 기관 역시 단협 조항이 노조에 대한 특혜로 뒤범벅됐다. 전임자는 인사평가에서 평균 이상 우대를 받도록 하고 간부 인사시에는 조합과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채용시 노조 대표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노조 추천 인사를 우선 채용토록 했다.

물론 이번 공공기관 평가에서는 불합리한 관행의 극복을 위해 노력한 기관도 적지 않았다. 수자원공사는 노조의 40일간 장기집회에도 원칙을 고수해 공기업 최초로 신입사원 초임삭감을 이끌어냈다. 산업단지공단은 효도휴가제,시간외수당 산정방식 등의 불합리한 조항을 없애고 광해관리공단은 기관장 취임 후 단체교섭에서 관리직 전원을 노조원에서 제외시켰다. 조폐공사도 노조를 설득해 전임자 수를 정부 기준 이하로 낮췄다. 이들 공공기관은 이런 노력을 통해 이번 평가에서 모두 우수등급을 획득할 수 있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