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간에 한은법 개정을 놓고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임에 따라 사실상 청와대가 조율에 나설 전망이다.

18일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 검사권을 부여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에 대해 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함에 따라 이에 대한 조율을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맡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한은법 개정에 대한 조율이 재정부가 아닌 사실상 청와대로 넘어가 오는 9월 정기국회 이전에 부처간 이견이 신속하게 정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 한은법 중재자 '재정부→국민경제자문회의'
한은법 개정은 지난 4월 임시국회의 주요 이슈 중에 하나였다.

한은법은 한국은행의 설립목적에 금융안정을 추가하고 제한적 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금감원의 기능과 중복된다는 측면에서 금융당국간 마찰이 불가피했다.

당시 국회 재정위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한은에 금융안정 기능까지 추가해야 한다며 표결처리를 강행하려다 재정부가 협의를 거쳐 9월 정기국회 개회 전까지 절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문제는 재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맡았지만 한은법의 소관부처인데다 금융위, 금감원, 한은 가운데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 고심 끝에 재정부는 이 문제의 조율을 국민경제자문회의로 이관하는 안을 마련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당사자 중에 하나인데 당사자끼리 한은법을 조율할 경우 한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자문을 해줬으면 한다"면서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간사가 청와대 경제수석이니깐 한은법 같은 이슈를 조율하기 수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지난 1999년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 정책 수립에 관해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설치된 대통령 자문기구로 의장은 대통령이며 재정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당연직 위원이다.

이처럼 국민경제자문회의가 한은법 조율을 맡게 됨에 따라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이 관련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재정부, 금융위, 금감원, 한은의 고위 간부들과 수시 회동을 통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낸 뒤 재정부가 이를 토대로 최종안을 만들어 9월 정기국회 이전에 재정위에 보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금융당국 '동상이몽'..국회통과 불투명
한은법 개정을 둘러싼 금융부처 간 조율을 위해 국민경제자문회의까지 동원될 예정이지만 한은과 금감원의 입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조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법 개정안은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 조사권 부여가 논쟁의 핵심이다.

기존에도 한은은 금감원에 공동 조사를 요청할 수 있지만 두 기관의 불협화음으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된 것이다.

한은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금융회사 검사권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금감원은 통합 감독기관을 보유한 나라에서 중앙은행에 검사권을 부여한 나라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금감원은 공동검사는 물론 정보 공유도 가능하지만 한은이 외환거래 정보 제공을 꺼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오히려 금감원이 제2금융권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고 공동검사도 소극적인 태도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금감원에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의 금리 재정거래에 대한 공동검사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합 감독기관을 보유한 나라에서 중앙은행에 검사권을 부여한 나라는 없다"며 "한은이 단독 검사권을 갖게 되면 금융감독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정위는 정부가 정기 국회 개회 전까지 절충안을 마련해오지 않는다면 국회에 마련한 대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위가 한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정작 정무위 위원들은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어 본회의 통과까지 머나먼 길이 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심재훈 기자 jbryoo@yna.co.krpresident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