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손해보험사의 실손(實損) 민영의보상품의 보상한도를 100%에서 90%로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지난 17일 아침 11개 손해보험사 사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정부 방침에 반발,"상품은 자율에 맡겨달라"는 건의서를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에 내기로 했다.

그러자 이날 오후 3시 생명보험사 사장들이 부리나케 모였다. 이들은 "손보업계가 반발한다고 해서 제도 개선이 후퇴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실손 상품에 대해 조속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금융위에 건의키로 했다.

노조도 나섰다. 18일 금융위 앞에선 생명보험 노동조합이 실손보험 보장제한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는 손해보험 노동조합이 지난 15일 실손보험 보장제한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낸 데 대한 대응이었다. 이같이 생 · 손보업계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은 실손상품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실질적인 치료비를 모두 보상해주는 실손상품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유일하게 잘 팔리고 있다. 손보사들은 매출의 약 30% 이상을 여기에 의존하고 있다. 손보사와 달리 의료비를 80%까지만 보상해주는 상품을 내놓아 경쟁력이 뒤처지는 생보사들은 손보사 상품에 규제가 가해질 경우 충분히 시장을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와중에 실제 이 상품을 팔아 이익이 생기는지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는 묻혔다. 현재 실손상품의 입원비 손해율(보험료를 받아 보험금으로 내주는 비율)은 무려 144%(2007년 기준)에 달한다. 이는 생보업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상품의 손익보다는 상품이 지금 잘 팔리느냐는 데만 업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이렇게 보험업계가 시끄럽자 고객들은 불신만 커지고 있다. 특히 실손상품 손실을 줄이기 위해 업계가 중복가입을 유도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내가 속아서 잘못 가입했나요"란 문의 전화가 기자에게 오기도 했다. 3년반을 지리하게 끌어온 이 문제를 정부가 빨리 결론을 내리려 하는 것도 분란을 조기에 정리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갈택이어(竭澤而漁)'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고기를 잡기위해 연못을 말린다는 말이다. 좁은 국내 시장을 놓고 40개에 육박하는 생 · 손보사가 이전투구를 벌이기보다는 수많은 고기들이 사는 '해외'라는 바다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김현석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