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증 떼고 들어오세요. "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130호 회의실.조원진 한나라당 의원(대구달서병,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이 전국 6개 지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 10명을 불러다가 '블라인드 간담회'를 열었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성윤환 이화수 한나라당 의원,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등 서로 입장과 명분이 다른 의원들이 모였다. 신분 노출을 꺼린 근로감독관들은 명찰도 명패도 자기 소개도 없이 비정규직보호법의 적용 실태를 가감 없이 전했다.


◆비정규직 96% 해고 위험 노출

광주지방노동청이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 151개 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5397명의 고용 불안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100명 중 96명은 사용 기간 2년을 채우기 전에 해고될 위험에 놓인 것으로 조사됐다. 비정규직 근로자 중 2년 경과시 사용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경우는 17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5227명은 계약 해지,대체 근로자 채용,외주화 대상으로 분류됐다.

이 비율대로라면 비정규직법 시행(2007년 7월) 이후 신규 취업이나 계약 갱신한 비정규직 근로자 92만8100명(정부 추산) 중 약 90만명이 오는 7월부터 매달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처럼 해고 통지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규직 전환이 예상되는 비율이 3%에 불과해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정규직 전환 통계 14.4%(한국개발연구원 조사)보다 훨씬 낮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여력이 있는 업체들은 이미 2년의 유예 기간 동안 적절한 조치를 취했고 이제는 한계선상에 몰린 업체들만 남아서 정규직 전환 비율이 점점 낮아질 거란 얘기"라고 분석했다.


◆정규직 보호가 너무 단단해서…

비정규직법이 현장 적용 과정에서 이 같은 부작용만 낳는 이유로는 정규직에 대한 단단한 보호장치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의 B사는 2007년 7월 이후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할 때 계약 기간을 23개월로 정했다. 사무보조 청소 우편수발 등을 단단한 보호를 받는 정규직으로 안고 가는 것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은 당직실 안내원 을씨(50대 중반 남성)는 "1~2년만 더 부담 없이 일하다 은퇴하려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부산의 C운송업체 역시 비정규직 5명 중 올해 6월 말 계약 기간이 끝나는 2명은 퇴사 조치할 예정이다. 다른 기간제 근로자를 새로 뽑아 쓰는 방법도 있지만 비정규직법이 이대로라면 늘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기에 해당 업무를 외주화하려고 생각 중이다. 퇴사 통보를 받은 병씨는 근로감독관에게 "2년마다 직장을 옮기는 것보다 비정규직이라도 한 곳에서 장기 근무하고 싶다"고 말했다.


◆'돌려막기' 할 바에야…

2년 기간 만료 근로자를 내보내는 회사 중에는 어차피 그 업무에 새로운 비정규직 근로자를 뽑겠다는 업체도 많았다. 비정규직법 적용 부담을 덜기 위한 속칭 '근로자 돌려막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비정규직 100명이 해고되면 그만큼 다른 이들이 채용되기에 실업률에는 영향이 없다는 얘기지만 기존 직장에서 뿌리를 뽑히고 떠돌아야 하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경기지역 대기업 D사는 4500명의 근로자 중에 146명이 비정규직인데 대부분이 여성 사무보조원이다. 이 업체 인사담당 상무는 근로감독관에게 "사무보조원을 정규직화하면 지금보다 인건비 부담이 15% 늘어난다"며 "현재 일하는 146명은 2년이 되기 전에 순차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여성을 뽑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작 해고 당사자인 사무보조원 정씨는 "애들 학원비라도 벌려고 나온건데 또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하느냐"며 비정규직으로라도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