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좋다 해도 신제품을 내놓기 위해 중소기업이 연구개발(R&D)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R&D를 포기하면 회사의 중장기 생존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장 허영섭)와 공동으로 '중소기업 R&D시대를 열자'는 목표 아래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짚는다.

주인식 파워트레인 대표는 1998년 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매출 138억원인 회사가 54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자동차 자동변속기의 핵심 부품인 토크컨버터 R&D를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임원진은 R&D 투자의 대규모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장고 끝에 주 대표는 '기업이 R&D를 줄이는 것은 농부가 씨앗을 먹는 것과 다름없다'며 10억원을 투자,이듬해 토크컨버터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현재 파워트레인은 연매출 2200억원에 이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으며 현대자동차 토크컨버터의 80%를 납품하고 있다. 주 대표는 "연매출액의 최소 7%를 꾸준히 R&D에 투자한 결과 최근 6단 변속기용 토크컨버터 개발에도 성공했다"며 "올해부터 수출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2020년까지 매출 1조원,관련 분야 세계 3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및 LED 복합응용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엔하이테크(대표 박호진)의 2000년 매출은 45억원이었다. 회사는 같은해 매출액의 6%에 달하는 2억6000만원을 투자해 복사기의 핵심 부품인 이레이저 램프(복사기 드럼에 남아 있는 토너 가루를 정전기를 이용해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광원)를 개발,제록스 등 다국적 기업에 납품했다. 외환위기로 월급이 제때 지급되지 못했던 때에 이룬 성과였다. 지난해 매출은 455억원으로 9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했다. LED 생산량의 70% 이상을 LED 종주국인 일본에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박호진 대표는 "벤처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개발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연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해왔다"며 "올해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R&D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열쇠다. 파워트레인과 엔하이테크는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기술개발에 투자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대다수 중소기업의 R&D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무척 취약하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평균 R&D 투자비율은 2002년 2.28%에서 2007년 2.85%까지 높아졌으나 아직 일본의 3.6%(2007년 일본 총무성 자료)에는 훨씬 못 미친다.

중소기업 R&D가 기업의 성장에 미치는 효과는 분명하다. 2000년 KOSBIR(정부 및 공공기관 R&D 예산의 일정비율 이상을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제도)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아 R&D에 나섰던 610개 중소기업의 매출액은 2000년 평균 60억원에서 2006년에는 118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중소제조업 평균 매출액 증가율인 55.24%를 뛰어넘는다.

또한 LG경제연구원이 2003~2005년 증권거래소 상장법인 477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4.26% 이상으로 상위 25%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매출액 성장률은 10.49%에 달했다. 하위 75%인 기업들의 성장률은 7.51%에 불과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R&D 투자를 늘려야 하는 까닭은 기술 수준이 선진국에 크게 못미치기 때문이다. 2007년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 대표 및 기술연구소장 3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기의 기술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74.6%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됐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유럽이나 일본의 일류 중소기업들은 한세기 이상 기술개발을 해왔다"며 "국내 중소기업은 최소 매출액의 4% 이상을 R&D에 투자해야 해외 선진 중소기업과의 기술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국내 중소기업은 R&D 없이도 대기업에 납품하며 버틸 수 있었지만 대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인 만큼 중소기업들도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며 "기술격차를 따라잡지 못한 중소기업은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
한경·산업기술진흥협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