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주채무계열(대기업 그룹)이 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430여개 대기업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등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시장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아직 냉정하다. 기업의 부실을 털어내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어 당초 생각했던 만큼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필요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사 갈등과 대량 실업 사태도 해결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과 한국경제신문은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4일 경제위기 대응패널 월례토론회를 갖고 합리적인 기업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업 확장과 축소 함께 진행돼야"

김용열 홍익대 상경대 교수는 '경제위기와 기업 구조조정' 주제발표에서 △확장과 축소(build and scrap) △보수적 기준 적용 △정부,기업,은행 간 역할 분담 등을 구조조정의 3원칙으로 제시했다.

'확장과 축소'는 기업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사업 규모와 범위를 확장했다면 그만큼 다른 부문에서 축소나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식품 사업을 주로 하던 어느 기업이 중공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이 분야의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를 늘렸다면 식품 사업에 대한 투자는 축소해야 재무구조 악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확장과 축소'는 경제위기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기업 경영의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며 "최근 재무구조가 악화된 대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하면서 기존 사업의 규모를 줄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구조조정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중 가장 보수적인 기준에 따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지금보다 좋아진다는 가정 아래 구조조정을 소홀히 하면 실제 상황이 악화했을 때 떠안아야 할 손실과 위험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버리려 하지 않다가 모두 부실해지는 것보다는 일부를 희생시켜 대부분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구조조정의 주체와 관련,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과 채권은행이 자율적으로 추진하되 정부는 촉진제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밝혔다. 시장에만 맡겨 놓을 경우 기업은 은행에,은행은 정부에,정부는 기업에 책임을 미루는 '3중 함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또 "정부가 업종별 구조개편 시나리오 같은 것을 만들어 발표하면 혼란과 불안만 불러올 위험이 있다"며 "정부는 구조조정을 도우면서 신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직자 위한 대책 필수

기업이 전략적인 차원에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그 실행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용을 위협받는 근로자와 노동조합이 구조조정에 반발하기 때문이다.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조조정 과정의 노동 문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노조의 반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을 재취업시키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회사가 어려우니 일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식으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사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 조정 대상자들에게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을 주는 등 추가적인 보상을 해주고 이에 필요한 재원은 주주와 나머지 직원들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해서는 체불임금을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임금채권기금에 대한 정부 출연금을 늘리고 체불임금을 보상받으려는 근로자를 위한 국선 노무사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한 근로자가 새로 취업한 기업에 고용유지 지원금을 주면 퇴직자의 재취업이 보다 원활해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