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펠 품은 러시아 '자동차 메이저' 노린다
캐나다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러시아 국영은행 스베르뱅크,러시아 자동차회사 가즈 컨소시엄이 이탈리아 피아트를 제치고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독일 자회사인 오펠 인수전에서 최종 승자가 됐다. 이에 따라 스베르뱅크는 오펠의 지분 35%를 보유하고,러시아 판매용 오펠 자동차는 가즈 공장에서 '메이드 인 러시아' 제품으로 만들어지게 됐다. 마그나의 오펠 인수전에 러시아 정부가 적극 개입한 것은 외국 자동차회사의 노하우를 활용해 휘청거리는 러시아 자동차산업을 살리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진출을 확대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전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제조업 기반 강화 나서는 러시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마그나와 스베르뱅크는 오펠에 7억유로(9억8000만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며,이 중 3억유로(4억2000만달러)를 2일까지 오펠에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협상안에 따르면 마그나는 오펠 지분의 20%,스베르뱅크는 35%를 갖고 GM과 오펠 직원들이 각각 35%와 10%를 보유한다. 독일 정부는 GM의 파산보호 신청에 대비,매각이 최종 완료될 때까지 오펠을 채권자들로부터 보호할 신탁기관을 설립한 뒤 15억유로(약 21억달러)의 브리지론(긴급 지원자금)을 제공하고,향후에도 오펠에 45억유로의 채무보증을 서주기로 했다.

러시아 2대 자동차회사 가즈는 돈은 투자하지 않지만 모스크바 인근 니즈니 노브고로드에 있는 공장에서 연간 18만대의 오펠 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서구 기술을 도입해 자국 자동차산업을 현대화하려는 러시아 정부의 의지와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마그나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세계 25개국에서 약 7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는 오스트리아 자회사 마그나 슈타이어를 통해 BMW 벤츠 크라이슬러 등의 위탁생산도 하고 있다.

마그나와 가즈는 그동안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러시아 최대 버스 · 트럭 및 도로건설장비업체인 가즈는 러시아의 대표적 올리가르히(신흥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가 소유한 베이직 엘리먼트가 대주주다. 데리파스카는 2007년 5월 마그나에 15억40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지난 3월 자금난에 몰려 채권단들에게 지분을 넘기기 전까지 마그나의 지분 20%를 갖고 있었다. 가즈는 2007년만 해도 1530억루블(50억달러)의 수익을 냈지만 러시아 시장으로 밀려드는 외국 차들과의 경쟁에 치인 데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정부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지난 3월 푸틴 총리는 러시아 대형 자동차회사 구제 방안의 일환으로 가즈에 40억루블(1억2900만달러)을 지원키로 했다.

◆제동 걸린 마르치오네의 꿈

자동차업종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오펠 인수의 주요 동인을 러시아 정부로 보고 있다. 모스크바 소재 우살시브 투자은행의 크리스 위퍼 수석 투자전략가는 "이번 계약은 자동차를 비롯해 국내 산업을 현대화하고 러시아 기업이 해외로 팽창해나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외부 파트너십을 활용하겠다는 러시아 정부의 전략과 일치한다"며 "스베르뱅크의 역할은 이런 계약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르만 그레프 스베르뱅크 은행장도 러시아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오펠 인수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기술들에 상당히 싼 값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전했다. 오펠은 연간 155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서유럽에서 107만대를 판매,7.9%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한편 피아트의 오펠 인수가 무산됨에 따라 크라이슬러뿐 아니라 오펠까지 인수해 '빅 피아트'로 도약하겠다는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 최고경영자(CEO)의 계획에는 제동이 걸렸다. 피아트가 마그나에 패배한 건 마그나가 피아트보다 더 유리한 현금 지급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마르치오네 CEO는 패배를 시인하며 "크라이슬러 인수에 힘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