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후 경영' 통해 그룹경영 관장할 듯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 논란이 29일 법적으로 일단락됨에 따라 지난해 4월 퇴진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은 삼성그룹의 경영권에 관계된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의혹에 대해서는 이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경영권 문제와는 직접 연관이 없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액을 재산정하라는 취지로 원심을 깨고 돌려 보냈다.

조세포탈 혐의는 항소심 대로 유죄가 인정됐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특검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 공식적으로는 삼성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로, 대주주의 지위만 유지하고 있을 뿐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영체제는 '이건희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로 짜였던 삼각편대가 작년 해체된 뒤 계열사 독립 경영 체제와 수요사장단협의회라는 집단지도체제를 병행하는 현 방식이 도입됐다.

이 전 회장의 사퇴는 개별 기업을 특검이 수사하는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단행됐고, 아들 이재용 전무도 백의종군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그렇지만, 그룹 경영에 대한 이 전 회장의 지배력이 감소했다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사회적인 여론만 조성된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도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었다.

하지만 삼성SDS BW 저가발행 문제가 미완으로 남아 이런 예측은 현실화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 삼성그룹은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시민단체가 지적하는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순환출자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 일각의 요청에 대해서는 "현재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는 약 20조 원 이상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다"며 시간을 달라고 했다.

쇄신안의 가장 핵심인 지배구조 개선 부분이 향후 최대 과제로 남은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쥔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전 회장이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나이(67)와 건강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그가 이전과 같은 체제로 삼성그룹의 경영 전반을 관장하는 위치로 복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에버랜드 사건은 `포스트 이건희'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빚어지는 과정에서 삼성으로서는 의외의 성과를 거둔 부분도 있다.

바로 삼성의 경영권이 이 전 회장에게서 이재용 전무에게로 넘어간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킨 점이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며 "현 위치에서 그룹의 중요 문제를 결정하는 수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 전 회장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막후에서 삼성그룹 경영을 관장하면서 지배구조 문제를 매듭짓고 나서 아들인 이 전무에게 '뉴 삼성'을 이끌도록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행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오는 2012년까지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25.64%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6% 중 5%를 초과한 부분을 처분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삼성그룹을 가장 심하게 압박하는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고, 비은행 금융지주사의 산업 자회사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논의 중이어서 이들 법의 개정 여부에 따라 향후 삼성 지배구조의 그림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배구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 전무가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처리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은 점도 이 전 회장의 막후 역할론을 부각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공식적으로 삼성그룹 경영에서 손을 뗐다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며 "결국 지배구조 문제도 이 전 회장의 의중에 따라 좀 더 시간을 두고 결정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