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삼성에버랜드 CB '저가 발행' 의혹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림에 따라 삼성은 지난 10년간 발목을 잡아왔던 불법 · 편법 경영권 승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기소 대상인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 전 · 현직 삼성 경영진뿐만 아니라 에버랜드의 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향후 행보도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법원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건에 대해서는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3자 배정했다면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손해액을 다시 산정하라"고 판시,삼성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SDS 사건은 그룹 지배구조나 경영권 승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질 경우 그룹 전반의 경영체제 안정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판결에 대한 삼성의 공식 반응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잃어버린 10년

삼성은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지긋지긋하게 따라붙던 불법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기업 본연의 경쟁력과 관계없는 지배구조 논란과 관련,재판에 시달려온 경영이 정상궤도에 진입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 이후 나타나고 있는 리더십 공백과 미래 성장동력 부재 문제 등은 향후 삼성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결코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제대로 대응해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 10년간 삼성의 수난은 눈부신 경영실적 달성과 궤를 같이한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의 비약적인 성장이 없었더라면 삼성 견제론 같은 비판적 여론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풍미했던 '삼성공화국론'은 무려 20조원의 기록적인 경상이익을 냈던 2004년을 배경으로 나왔다. 삼성이 막강한 자금력과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각계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나선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삼성공화국론이 삼성 특검 사태로 이어지면서 경영의 중추였던 이 전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면서 그룹 전반의 내적 역량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에버랜드 CB 사건 등의 재판일정이 미뤄지면서 사장단 인사가 늦춰지는가 하면 차세대 신수종 사업에 대한 전략적 의사결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략기획실을 대체한 사장단협의회는 산하에 투자조정위원회,브랜드위원회 등을 두고 있지만 그룹차원의 신사업 투자 등은 표류 중이다.

◆외부 경영개입 최소화해야

이번 판결은 단순히 에버랜드 사건의 유 · 무죄를 떠나 우리 사회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가장 큰 과제는 '국민정서법'을 넘어서는 것이다. 최종적인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의 논쟁은 '삼성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과정은 뭔가 큰 문제가 있어보인다'는 여론과 그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만들어 낸 것이 사실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삼성은 모든 문제를 법적 테두리 내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업일 뿐인데,부정적으로 과도하게 형성된 여론과 소급입법 논란 등이 삼성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만들었다"며 "기업을 정치적으로 보는 풍토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10년간의 소송에 따른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회복할지도 과제다. 다보스포럼이 올해 초 발표한 100대 지속가능한 기업에 삼성 명단은 없었다. 삼성의 실력이나 역량에 비해 글로벌 브랜드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공한 기업의 경영체제에 대해 시민단체 등이 과도하게 간섭하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주주들이 승인하고 결정하는 지배구조에 대해 외부 세력의 개입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준/송형석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