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식 삼성중공업 사장은 지난 4일부터 7일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WIND POWER 2009' 전시장에서 아예 상주하다시피 했다. 전시회에 참가한 120개사,3000여명의 잠재 고객 중 삼성중공업 부스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부스에는 풍력발전 설비의 발전실을 실제 크기의 4분의 1로 줄인 모형을 전시했다. 이 개발 모델 하나가 미국 씨엘로사의 관심을 끌며 2.5㎿(메가와트)급 풍력발전기 3기에 대한 공급 계약으로 이어졌다.

◆선박 프로펠러 기술이 풍력발전으로

삼성중공업이 풍력발전 설비 생산공장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자체 개발 모델만으로 주문을 따낼 수 있었던 배경은 풍력발전의 핵심장치인 '블레이드(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에 있다. 엔진의 추진력을 회전력으로 바꾸는 블레이드 관련 기술은 선박용 프로펠러에 적용되는 기술과 비슷하다.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풍력발전 설비 개발에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풍력발전 설비의 성능을 좌우하는 구동장치 및 제어시스템에도 선박 건조를 통해 축적한 기술을 그대로 응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대규모 연구 · 개발(R&D)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노하우만으로 충분히 풍력발전 설비 사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중공업의 2.5㎿급 풍력발전 설비는 기존 미국 제품들보다 발전효율이 10% 높고 내구성이 5년 긴 25년이다. 영구자석형 발전기를 달아 유지 및 관리도 쉽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풍력발전 단가, 태양광의 20%

풍력발전이 신 · 재생 에너지 가운데 투자비가 가장 적게 든다는 점도 조선업체인 삼성중공업에 유리한 요인이다. 대부분의 대형 조선업체들은 선박 건조를 위해 이미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해놨기 때문이다. 풍력발전은 전력 ㎾당 생산 단가가 평균 107원가량으로 태양광 발전(㎾당 500~600원)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이 전북 군산의 국가산업단지에 국내 최대인 600㎿ 규모의 풍력발전설비 생산공장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시장 진출을 발판으로 삼아 풍력발전 설비 사업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미국이 전체 전력의 1% 수준인 풍력발전을 2030년까지 2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에 따라,현지 내수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설비 생산규모를 대폭 늘려나간다는 전략이다.

삼성중공업은 풍력발전 설비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총 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010년까지 2.5㎿급 및 5㎿급 풍력발전 설비를 연간 200기씩 생산하고 2015년에는 풍력발전 설비 부문에서만 매출 3조원(800기 생산)을 올린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이를 위해 현재 4개팀 80명 수준인 풍력발전 설비 관련 인력을 2015년까지 1000명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연간 1600기까지 생산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걸맞은 공장 부지도 물색하고 있다.

◆미국 · 중국 · 인도 시장 '정조준'

시장 진입 초기에는 2.5㎿급 육상 풍력발전 설비로 면적이 넓은 미국과 중국,인도 등을 공략하고 2015년부터는 발전 효율이 높고 소음 측면에서 유리한 해상발전 설비로 아시아 및 유럽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남동발전이 국책과제로 진행하는 '영흥 국산 풍력 상용화단지' 조성사업에도 2.5㎿급 제품을 현물로 출자,올해 안에 국내 시장에도 첫발을 내딛는다는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풍력발전 설비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향후 삼성중공업의 사업 축을 '조선-건설-풍력발전 설비' 중심으로 재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