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머리가 아플만 했다.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19일 열린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빨리 회복되긴 힘들다는 진단이다.

심지어 너무 일찍 경기가 회복되면 오히려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도 한시적인 효과만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크루그먼이 오바마 행정부에 ‘노벨상급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는 뉴스위크의 분석은 적절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는 각국 정부 입장에서는 힘 빠지는 소리가 주류였다. 크루그먼 교수의 주요 발언을 요약한다.

◆“신용위기는 적당한 단어가 아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신용위기’나 ‘금융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진단했다. 경제위기의 본질이 은행 등 일부 금융회사의 잘못에서 파생됐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은행의 시스템이 정상화하고 무너진 신용만 회복되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번 위기는 더 큰 원인에 의해 파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속가능하지 않았던 ‘무분별한 대출관행’이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결론을 향해 가고 있지 않다”

크루그먼 교수는 “아직 세계 경제에는 과다부채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 탈출을 논하기엔 이르다”고 못박았다. 자산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디레버리징’ 과정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미국의 경기부양책도 장기적인 효과를 거두긴 힘들다고 내다봤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 미국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경기부양 자금은 많아야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인 반면 수요 부족액은 GDP의 7%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며 “경기를 살려내기엔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다른 행성으로 수출할 수는 없지 않느냐”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의 세계 경제 상황이 1990년대 일본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극도로 위축된 수요로 인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사라진 수요를 되살리느냐에 정책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크루그먼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다른 행성에 수출하거나 세계 대전을 다시 겪을 수는 없는 만큼 새로운 수요 창출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친환경 기술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너무 빨리 회복돼도 위험하다”

최근 상당수 전문가들은 조심스레 ‘경기 회복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여전히 비관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오히려 너무 빨리 불황에서 벗어나면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1990년대 말에 일어난 아시아 금융위기는 현재의 금융위기를 예고하는 리허설이었다”며 “근본적인 원인이 치유되지 않은 채 경기가 회복될 경우 사람들은 이번에도 교훈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경닷컴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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