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국제관문인 타오위안 공항.주말인데도 썰렁한 모습이다. 이종혁 대한항공 타이베이 지사장은 "매년 5%가량씩 늘어온 대만의 출국자 수가 지난해 5.5% 줄어든 850만명에 그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13% 감소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0일로 마잉주 총통(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는 대만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황즈펑 대만 경제부 국제무역국장(차관)은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개선으로 중국 구매단이 잇따라 대만을 찾을 것"이라며 "3분기에는 수출이 플러스 성장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안 해빙이 불황의 그늘에 햇빛을 비쳐줄 것이라는 기대다.

◆여전한 불황의 그늘

타이베이 최대 전자상가인 광화마트.대만 정부가 연초 소비 진작을 위해 전 국민에게 제공한 소비쿠폰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무색하게 손님이 뜸한 모습이다. 이민호 KOTRA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자동차 판매도 2005년 55만대에 달했으나 지난해 25만대로 절반 이상 줄었고 올 들어서도 감소세가 뚜렷하다"고 밝혔다. 타이베이의 명동으로 불리는 시먼딩에서도 간간이 점포 임대 문구가 눈에 띈다. 지난 3월 실업률이 5.81%로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데다 무급휴가가 늘면서 소비심리가 움츠러든 탓이다.

특히 제조업 위축은 전력 수요 감소로 이어져 지난해 추진됐던 민자발전소 입찰이 취소되기도 했다. 송한승 두산중공업 타이베이 지사장은 "2012년 전력 수요 부족을 예상해 진행했던 민자발전소 입찰이 경기 위축으로 전력이 남아돌 것으로 예측되면서 취소됐다"며 "2015년 전력 수요를 겨냥한 새 발전소 입찰 계획도 아직 나올 조짐이 없다"고 전했다. 마 총통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야당인 민진당이 17일 주도한 반정부 거리시위에 10만여명이 참여한 것도 이 같은 경기침체와 관련이 깊다.

◆"중국서 투자 · 구매 사절단 온다"

그렇지만 대만 경제에도 서서히 봄볕이 들고 있다. 김기윤 대우인터내셔널 타이베이 지사장은 "중국의 수요 회복에 힘입어 화학제품 가격이 지난 3월부터 반등세이며 철강제품도 이달 들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황즈펑 국제무역국장은 "1분기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30% 이상 줄었지만 작년 11월과 12월의 40%에 비하면 감소폭이 줄어든 것"이라며 "3분기에는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대만 수출은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한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에는 양안 관계 개선이 깔려 있다. 타이베이 시내의 랜드마크인 101층 빌딩 앞에선 중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올해 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관광객은 대만 관광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류탁기 SKC하스디스플레이 타이베이 지사장은 "농민 가전제품 구매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중국 정부의 가전하향 정책 덕분에 대만의 LCD(액정표시장치)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대만의 2위 LCD업체인 치메이(CMO)는 벼랑 끝에 몰렸다가 중국 정부 주선으로 중국 업체가 LCD를 대규모 구매하면서 기사회생하기도 했다.

대만 언론들은 연일 양안 관계 개선 조치를 보도하고 있다. 지난 13일 대만 일간지 중국시보에는 제조 서비스 공공사업 등 3개 부문 99개 업종에 중국 자본의 투자를 허용한다는 개방 리스트 보도가 1면을 장식했다. 나흘 뒤인 17일 중국 정부는 대만에 제공할 8개 우대 방안 발표로 이에 화답했다. 전자통신 바이오의약 해운 공공건설 유통 기계 방직 자동차 등의 대만 투자 시찰단을 조직하고 공산품 구매단을 5월부터 7월까지 세 차례 대만에 보낸다는 내용 등이 골자다.

마 총통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는 것도 양안 해빙 기대감 덕분이다. 취임 당시 58%였던 지지율은 금융위기가 강타한 지난해 말 30%대로 추락했지만 최근 56%대로 다시 올라서고 있다. 대만 증시의 가권지수도 올 들어 43.2% 급등하며 마 총통 취임 1주년에 축포를 터뜨릴 태세다. 대만 정부는 경기가 조기 회복할 경우 해외에 나가 있는 6000억달러 이상의 대만 자본이 회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타이베이=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