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 장림동에 있는 중소 섬유기업 동양제강 공장.몇개 출입구를 지나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있는 공장 가장 안쪽 문을 열고 들어서자 흰색 원사를 뽑아내는 50m 길이의 생산라인이 나타났다. 공장 한쪽에는 머리카락 굵기의 실 10가닥을 엮은 얇은 줄이 154㎏의 무게추를 매달고 있는 전시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 처음으로 초경량 슈퍼섬유인 UHMWPE(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미라클(기적)' 섬유를 최근 개발한 곳이다. UHMWPE 섬유개발을 'X프로젝트'로 이름 붙이고 비밀연구에 나선 지 4년 만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섬유는 철강 와이어보다 10배 이상 인장강도가 높다. 기존 슈퍼섬유인 아라미드 섬유보다 비중이 35% 가볍고,수분흡수율도 '제로(0)'에 가깝다. 회사측은 미라클 섬유가 방탄복 등 방위산업은 물론 심해 정박용 로프 등 해양플랜트 및 조선업에서 각광받는 소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초(超)고부가 제품으로 탈바꿈

산업용 섬유의 적용 영역이 무한 확장하고 있다. 고강도 · 고탄성의 슈퍼섬유와 스마트섬유,나노섬유 등 다양한 기능을 지닌 산업용 신섬유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그 쓰임새가 육 · 해 · 공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초소재로 널리 사용되는 철의 영역을 넘보며 '산업용 쌀'로 변신하고 있다.

동양제강이 개발한 UHMWPE 섬유는 시장가격이 ㎏당 7만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 ㎏당 3000원인 폴리에틸렌(PE)을 원료로 사용해 20배 넘는 가격에 팔 수 있는 고부가제품이다. 전 세계에서 이 섬유를 생산하는 국가는 미국 네덜란드 등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UHMWPE 섬유는 전량 네덜란드 다이니마사에서 수입하고 있다.

개발과정에 참여한 임승순 한양대 응용화공과 교수는 "일부 국가들이 독점하고 있는 슈퍼섬유를 원료에서부터 생산까지 100% 국내기술로 개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UHMWPE 섬유는 닻을 내리는 데 사용하는 선박용 로프와 자전거 및 패러글라이딩,헬리콥터 · 비행기 프레임 등에 사용할 수 있다. LNG(액화천연가스)선 한 척에 실리는 철제 로프의 무게는 5t.이 로프를 섬유로 대체하면 무게는 1t 안팎으로 줄어든다. 차상영 동양제강 사장은 "연말까지 상업화시설을 완공하고 본격적인 생산에 나설 계획"이라며 "2015년까지 세계시장의 20% 점유율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풍력발전기 · 선박 · 헬기 등 어디든지

부산 녹산산업단지에 있는 광동FRP 공장에 들어서자 12m 높이의 대형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산중공업이 개발한 3㎿급 해상용 풍력발전기에 들어가는 기어 보호 커버다. 한 기의 무게가 20t이 훌쩍 넘는 풍력발전기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블레이드(날개)와 기어 커버를 탄소섬유로 만들고 있다.

정경우 광동FRP 기술부 차장은 "풍력발전기 블레이드의 무게와 유연성은 발전효율과 직결된다"며 "산업용 섬유의 진화 없이는 풍력발전의 기술 개발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또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과 탄소섬유를 동체용 소재로 사용한 요트와 특수선 보트 등도 생산한다. 탄소섬유를 사용한 선박 무게는 기존 선박의 절반 이하로 줄어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다.

◆바이오 · 나노섬유 시대 열렸다

국내 섬유산업의 무게 중심이 산업용 섬유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섬유산업의 총매출에서 산업용 섬유 비중은 1980년대 10% 수준에서 작년 말 현재 30% 수준까지 높아졌다.

섬산련은 IT(정보기술) · BT(바이오기술) · NT(나노기술) 기반의 신섬유 산업 로드맵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지식기반 신섬유 기술개발 촉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하명근 섬산련 부회장은 "산업용 섬유비중이 절반 이상을 웃도는 일본 미국 등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다"며 "2015년께면 한국의 전체 섬유 수출액(목표) 200억달러의 60% 이상을 첨단 신섬유가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