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지만 국내 대형 수출기업들은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 수준의 환율도 지난해와 비교하면 높은 수준인 데다 환율대별 시나리오 경영계획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개별기업이나 정부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환율보다는 오히려 해외 수출경기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2일 "최근 환율이 빠르게 하락해 가격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외화부채에 대한 이자와 매년 수조원의 시설투자 비용이 달러와 엔화로 나가기 때문에 플러스요인이 생기는 만큼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하반기 환율이 110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보고 환율변동에 따른 사업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상태다. 특히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분을 반도체 가격 상승과 휴대폰 및 LCD 판매가 충분히 막아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동차업계도 환율 하락에 따른 매출 손실을 걱정하면서도 시장점유율 확대로 불황을 돌파한다는 전략에는 변함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환율은 외부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적응하면서 갈 수밖에 없다"며 "해외 현지생산을 늘리는 등 환율변동에 구조적으로 대비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하는 정유업체와 철강업체는 환율 하락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포스코 관계자는 "수출에서는 다소 손해를 볼 수 있지만 철광석과 유연탄 등 원자재 구입비용이 줄어 전체적으로는 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포스코 영업이익은 수백억원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도 "원유를 전량 수입하고 생산한 제품의 60%를 수출하는 구조여서 최근 환율 하락으로 수익구조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에너지는 그러나 이 같은 환율하락세가 기조적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라며 하반기 1200원대 후반에 맞춘 보수적인 사업계획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환율하락세가 지속돼 하반기에는 1100원대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수익개선에 기대를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외화 부채가 많고 원유 도입이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에 원 · 달러 환율이 100원 하락하면 이익이 2000억원 늘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특히 환율 하락으로 해외여행과 유학생 증가에 따른 수혜도 기대하고 있다.

김용준/이정호/박민제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