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난항'] 노조 "결사 반대" 포문
[ 노조 '격앙' ]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금지가 시행될지 여부는 이명박 정부와 노동계의 힘겨루기에 의해 판가름날 전망이다. 노동부는 "선진노사의 틀을 완성한다는 차원에서 정부가 이들 제도를 시행하려는 것"이라며 "13년간 시행이 유보된 만큼 이번에는 정부도 물러설 명분이 없다"며 강력한 시행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내년 1월1일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원을 금지하기로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을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은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건 전쟁이나 마찬가지"라며 총력 투쟁을 불사할 뜻을 내비쳤다. 장 위원장은 "전임자임금을 안 주면 개별 노사관계는 분쟁에 휩싸일텐데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노사현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행정가나 학자들의 뜻에 따라 정책을 추진한다면 사회 통합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가 강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면 강경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논의 과정에서 노 · 정 간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입장도 강력하긴 마찬가지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한다면 노동운동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절대 시행불가"라고 못을 박았다. 복수노조와 관련해서도 임 위원장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실제로 시행된다면 조직 분열 등 여러가지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피력했다. 복수노조 시행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90% 이상이,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70% 이상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부가 내년 1월 시행을 강행하려면 이러한 노동계의 반발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건 노동계의 투쟁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 제도를 시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정치권 '눈치' ]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지급금지 제도 시행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치권은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내년 시행을 또다시 유보할 태세다. 아직 당론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어 내년 1월 시행은 물건너 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위기이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10일 "여러 차례 연기돼온 사안인 만큼 올해 안에 논의를 끝내야 하지만 시행 여부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그러나 법이 지금으로도 맞으면 그냥 가면 되는 거다. 다시 유예하면 된다"고 말해 시행 유보쪽에 힘을 실었다. 다시 말해 급할 게 없고,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최경환 한나라당 수석정조위원장 역시 "10년 넘게 시행이 미뤄져 와 올해 안에는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워낙 복잡 미묘한 문제여서 지금 되느냐 안 되느냐는 노동계의 요구 등을 감안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또다시 유보'의 뜻을 내비쳤다. 노동계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밀어붙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전망이다.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은 "내년 1월 시행 이전에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며 "노사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를 굳이 서둘러 시행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내년 시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도 이들 제도가 내년에 시행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재윤 의원은 "전임자임금 문제와 복수노조는 좀더 논의해야 할 이슈"라며 "노동계와 재계 모두가 반대하는 제도를 왜 시행하려느냐"고 되물었다. 민주당의 대부분 의원들도 이들 제도의 내년 시행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법대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던 청와대 역시 다소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입장을 정리한 상태이지만 워낙 미묘한 핵심 이슈여서 시행 여부를 밝힐 단계가 아니다"고 말해 시행 여부가 어떻게 결말날지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이에 대해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 문제는 워낙 복잡하고 미묘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득할 것이다. 대통령도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금지로 인해 노동현장이 받게될 충격을 안다면 쉽게 시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시행 유보를 확신했다.



[ 재계 '두 목소리' ]

재계는 전임자임금지급은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노 및 노사 갈등을 부추길 우려를 안고 있는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선 기업에 따라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계가 노조전임자임금지급금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복수노조가 시행돼 노조가 난립해도 혼란을 최소 한도로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임자 임금을 노조 스스로 충당케 할 경우 재정 자립이 어려워져 노동운동 자체가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복수노조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린다. 파업을 연례행사처럼 겪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굳이 복수노조를 찬성할 필요는 없지만 허용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여러 계파로 분열돼 노노 및 노사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앞으로 복수노조를 시행할 경우 지금보다 나으면 나았지 더 악화될 소지는 없다는 주장이다. 지금처럼 투쟁의 덫에 빠진 노조와 색깔을 달리하는 개혁적 · 합리적 세력들이 온건노조를 만든다면 노사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안정될 수 있다는 예측이다.

물론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사무직 영업직 연구직 등 다양한 직종별로 노조가 만들어지고 같은 직종 내에서도 여러 개의 복수노조가 생겨 노노 및 노사 갈등이 확산될 우려가 적지 않다. 하지만 복수노조가 정착될 경우 합리적 노조가 현장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강경파는 퇴조하고 온건파가 노조를 지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기업들은 복수노조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인다. 한때 극심한 노사 갈등에 시달리다 협력적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기업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현대중공업 KT 두산중공업 등이 대표적이다. 상생의 노사문화가 정착됐다고는 하지만 강성 세력들이 여전히 포진해 있어 복수노조가 만들어질 경우 선명성 경쟁 등이 불가피해져 노노 및 노사 갈등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다.

기업들이 겉으로는 전임자임금지급을 반대하지만 복수노조만 허용되지 않는다면 전임자임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윤기설 노동전문/김유미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