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켄 루이스 최고경영자(CEO)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29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그는 파산 위기에 처한 메릴린치를 인수 · 합병(M&A)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주요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뉴욕 검찰에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으로부터 메릴린치 인수 당시 세부사항에 대해 비밀을 유지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진술한 사실도 공개돼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BOA는 거대 부실을 갖고 있는 메릴린치를 사들인 후 고전 중이다.

CNN머니는 23일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뉴욕 검찰 조사에서 책임을 폴슨 전 장관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한 게 결코 주주들의 원성을 잠재우진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히려 정보 공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주총에서 루이스 CEO와 이사진에 대한 퇴진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BOA 주주인 조너선 핑거씨는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루이스 CEO에게 증권거래법을 어기도록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정책 당국자들의 압력에 관계없이 주주들을 보호하고 정확한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앤드루 쿠오모 뉴욕 검찰총장의 보고서 내용이 오히려 루이스 CEO와 이사진에 대한 신뢰를 더욱 추락시켰다며 주총에서 루이스와 일부 이사들을 물러나게 하겠다고 밝혔다.

교직원 연금펀드(TIAA-CREF) 등 기관투자가들도 투명성과 경영 핵심 사항을 알아야 하는 주주 권리가 침해된 만큼 루이스의 사임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뉴욕에서 투자자를 대변하는 '주주포럼'을 운영하는 게리 루틴씨는 "결과에 관계없이 경영진은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며 "쿠오모 보고서에 드러난 대로라면 루이스 CEO는 (주가 하락 등 정보 공개가 가져올 결과를 두려워한) 겁쟁이일 뿐 아니라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했다.

쿠오모 총장은 전날 의회 지도자 및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사 과정에 BOA의 지배구조와 정보 공개 관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총에서 루이스 CEO가 쫓겨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통상 증권사들이 행사하는 기관투자가들의 대리 투표(broker vote)가 현 경영진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BOA 주총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 루이스 CEO의 재선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연합체인 '체인지 투 윈'은 최근 2년간의 통계에 비춰볼 때 금융사가 대리투표하는 지분이 전체의 22%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나머지 표에서 3분의 1의 찬성만 얻으면 루이스 CEO의 재선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개인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증권사 대리투표권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고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