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석유화학 '햇살'-자동차.철강 아직 '구름'

실물 경기가 바닥을 치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산업계는 업종별로 1분기 실적을 토대로 한 향후 경기 전망이 한창이다.

증시와 환율, 주택 및 건설경기, 유통매출 등이 호전되면서 일부 업종에서는 어두운 불황의 터널 끝이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경제에 아직 위기 요인이 상존하고 있고 산업 수요의 위축도 여전하다는 이유로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고 있다.

업종별로도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반도체와 LCD를 중심으로 한 전자업계와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봄날'을 예고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부진의 늪에 빠진 철강과 자동차, '수주 가뭄'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조선은 '온기'를 느끼기에 시기상조라는 관측이다.

◇ '봄날은 왔다'..전자.석유화학 = 작년 하반기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 위축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전자업계는 회복 조짐이 완연하다.

LCD TV와 휴대전화는 올해 1분기 예상밖에 호조를 보이고 있고, 반도체와 LCD는 아직 본격적인 수요 회복은 아니지만 "바닥을 찍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가동률도 정상 수준에 가깝게 회복됐다.

여기에 마케팅 비용의 감소와 환율 상승 등으로 전자업계의 영업이익률이 연초의 시장전망치보다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휴대전화와 LCD TV의 미국, 유럽, 중국 등지에서 호조를 보여 실적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TV의 경우 경기침체로 집안에서만 지내는 `코쿤족(族)'이 늘어난데다 최근 가격 경쟁력을 가진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오히려 판매가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와 LCD도 최근 희망적인 신호들이 부쩍 늘었다.

삼성전자는 최근 업그레이드 작업이 진행 중인 화성 10라인을 제외하고는 완전가동 중이고,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5-20%까지 생산량을 줄였던 LCD 라인도 올 들어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하이닉스는 아직 가동률은 70-80%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직원들이 무급휴가를 가면서까지 생산량을 조절해야 했던 상황은 지난달 모두 종료됐다.

최근에는 일부 거래선에 대해 10% 안팎 인상된 가격으로 D램 공급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 올 들어 가동률이 사실상 2월 이후 풀가동 수준을 회복했다.

정유업계와 유화업계는 올해 1분기 예상외의 실적 호전에 미소짓고 있다.

정유업종은 SK에너지 등 정유 4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연초 정제마진 강세 등으로 양호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며, 석유화학업종도 다른 업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기대하고 들뜬 표정이다.

이런 호조세는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의 시장 상황이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회복세를 보인 데 힘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석유공사의 자료를 보면, 올해 1∼2월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수출량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7% 증가했다.

작년 1월과 2월 국내 정유 4사의 수출량은 4천411만 배럴이었다.

올해 1월과 2월 수출량은 이보다 약 746만 배럴 증가한 5천157만 배럴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유화업체들은 설비를 최대한 가동하며 수익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80% 아래까지 내려갔던 석유화학업체들의 설비 가동률은 최근에는 거의 10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세계 전반의 수요가 움츠러든 상황에서 이런 호조세가 단기간에 그칠 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희망보다 아직 걱정이'..자동차.철강 = 경기침체로 1분기 최악의 판매감소를 겪었던 자동차업계는 2분기에도 큰 폭의 반전은 기대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고 할부금융 경색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전년 동기대비 판매량은 여전히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수출의 경우 원.달러 환율상승과 엔고 현상으로 국산차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고, 내수는 정부의 세금 감면 정책이 일정 정도 효력을 발휘할 경우 그나마 차량 판매의 전년대비 감소폭은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업계는 2분기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작년 대비 수출 감소율이 1분기 30.2%에서 2분기에는 13.8%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는 1분기 판매가 13.5% 감소했지만, 3월에는 전달에 비해 내수는 4천여대, 수출은 2만5천여대 증가한 추세로 볼 때 2분기 매출 상승을 기대하고 있으며, 기아차도 3월 전체 판매량이 2월보다 1만6천대 가량 늘어난 것을 청신호로 보고 있다.

현대차는 울산 3공장(아반테.i30)에 이어 에쿠스와 제네시스를 생산하는 울산 5공장이 이달들어 잔업과 특근을 시작했지만 다른 공장들은 아직 예년의 가동률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르노삼성과 GM대우, 쌍용차 등도 1분기 극심했던 판매 감소가 2분기에는 다소간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는 형편이다.

조선업계는 이미 확보한 물량을 통해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겠지만, 수개월째 지속돼 온 '수주가뭄'이 해소될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 업체들은 3년 가량의 일감을 수주해 놓았기 때문에 활황기의 가동률이 유지되고 있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전 세계적인 발주 감소로 올 들어 선박 수주가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중소형 조선사들은 신용경색으로 자금난에 처하자 퇴출 결정을 받거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판정받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다만 유력 조선사들은 올해 발주가 점쳐지는 대규모 해양 플랜트 프로젝트에 기대를 걸고 있다.

철강은 세계 철강산업이 지난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1.8%)한 이후 국내 업황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자동차, 가전 등 수요산업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창사 이래 처음 감산에 들어간 포스코의 경우 이달까지 1분기와 비슷한 수준인 25% 감산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다.

그러나 2분기 전체로는 1분기보다 감산 규모를 줄여 생산량이 1분기 590만t에서 2분기에는 650만t으로 다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포스코는 최근 1분기 실적 발표를 하면서 "시중에 재고가 정상치보다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제철의 현재 가동률도 생산능력 대비 80~85% 수준이며, 2분기 중에는 월 5만t 전후 수준의 감산이 예상돼 분기 감산량이 15만t 전후가 것으로 보인다.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철강업의 본격적인 회복은 3분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유통업계는 백화점이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명품.화장품 매출 성장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는 반면 대형마트는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매출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분기 백화점의 작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으나, 대형마트는 1.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연합뉴스) fai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