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2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당초 예상됐던 0.5%포인트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ECB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25%로 낮췄다. 이는 1999년 ECB가 창설된 이후 사상 최저치다. ECB는 기준금리를 지난해 10월 이후 이번까지 6차례에 걸쳐 총 3.0%포인트 내렸다.

ECB의 이번 추가 금리 인하는 최근 유로존 경제지표가 지속적으로 악화된 데다 이미 제로권에 진입한 미국과 영국의 기준금리에 비해 아직은 높은 편이란 점에서 충분히 예상됐던 조치였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미 기준금리를 0~0.25%로 낮춰 사실상 제로금리 정책을 시행 중이고,영국중앙은행(BOE)도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0.5%까지 내렸다.

지난 2월 유로존 실업률은 8.5%로 2006년 5월 이후 약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사상 최저인 0.6%(전년 동월 대비)로 잠정 집계돼 ECB의 물가 안정 목표치인 2%를 크게 밑돌며 수요 급감 속 물가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웠다. 유로존의 작년 4분기 성장률은 -1.5%로 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최악의 성적을 나타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유로존 성장률이 -4.1%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고,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도 각각 -3.2%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ECB가 금리 인하폭을 예상보다 좁힌 이유는 금리정책 카드를 소진했을 경우 미국이나 영국처럼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 정책 카드를 꺼내 쓰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로존 16개국의 통화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ECB로선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할 경우 어느 나라의 어떤 자산을 매입할지에 대해 회원국들 간 이해 대립이 첨예해 이 정책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유로존 회원국 및 역내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 채권 발행보다는 은행 대출을 훨씬 선호해 영미식 양적완화 정책의 실효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1.0% 기준금리를 마지노선으로 남겨 놓고,양적완화에 나서기 앞서 은행들이 중앙은행에서 빌려간 자금 만기를 연장해주거나 담보조건을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우선 사용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 인하폭은 '만장일치'가 아닌 '합의'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금리는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혀 통화정책회의에서 회원국 간 의견 충돌이 심했고,앞으로 추가 금리 인하에도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 "다음 정례회의에서 양적완화와 유사한 성격의 정책 수단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