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시장이자 두 번째 교역상대국인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최종 타결될 경우, 과연 우리 경제 전체와 각 업종이 어떤 수혜 또는 피해를 입게 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체로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현재 EU에 대해 184억달러(2008년 기준)에 이르는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수출우위' 상황에서, 평균 4% 수준인 EU의 관세까지 없어지면 전체 경제에 종합적으로 '득'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동차, 가전, 섬유 등의 경우 뚜렷한 수출 확대 효과가 기대되고, 고가의 유럽산 수입 차.의류.화장품 등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도 소비자로서는 이익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한.EU FTA 발효로 우리나라 GDP가 단기적으로 2.02%, 장기적으로 3.08% 가량 늘고 1인당 국민소득도 35만~48만 원 가량 많아질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소재를 포함한 화학과 기계류 등 EU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에서는 '완전 개방'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무역 역조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취약 부문인 농업의 경우 더 싼 값의 유럽산 돼지고기와 낙농품 등이 밀려들면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울러 FTA로 타결로 지적재산권이 강조되면 '지리적표시제'에 따라 '샴페인', '코냑' 등의 명칭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명품 '짝퉁' 단속과 처벌도 더욱 엄격해진다.

◇ 자동차 '최대 수혜' 예상
한.EU FTA가 타결로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업종은 무엇보다 자동차다.

관련 업계는 EU 권역 수출이 크게 늘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EU는 작년 기준 자동차 수요가 1천473만8천대로 미국(1천319만대)보다 많은 세계 최대 시장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EU에 총 40만8천934대, 50억9천859만달러어치 자동차를 수출한 반면 EU로부터의 수입은 4만1천880대, 19억8천781만달러어치에 불과했다.

수량 기준으로는 수출이 수입의 9배에 이르지만, 금액 기준으로 약 2배에 불과한 것은 수출이 소형차 중심인데 비해 수입은 주로 고가 대형 위주기 때문이다.

이번 협정으로 배기량이 1.5ℓ를 넘는 가솔린 및 디젤 모델은 3년안에, 1.5ℓ이하 차량은 5년안에 관세를 없애면 한국산 가격 경쟁력이 커져 유럽시장 공략이 더욱 활기를 띨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현행 수입 관세만 보더라도, EU가 한국보다 2%포인트 높은 10% 수준이기 때문에 협정에 따른 관세 철폐는 한국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다만 1.5ℓ 초과 모델의 관세가 먼저 없어지는만큼 유럽의 이른바 '명차'들이 프한국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우려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경우, 현재 국내 판매 가격이 1억2천990만~2억5천990만원에 이르지만, 관세가 8% 낮아지면 1억1천950만~2억3천910만원까지 가격이 낮아진다.

한 대 값이 많게는 2천만원이상 싸지는 셈이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관세가 철폐되면 EU지역 수출이 현재보다 최대 20%이상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10%를 넘더라도 득이 실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FTA 협상에도 기준으로 작용,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 전자.섬유 등 '기대'
우선 주요 업종 중에서는 자동차와 더불어 전자업계의 수혜가 예상된다.

전자제품(반도체 제외)의 경우 우리나라가 지난해 EU와의 교역에서 업종 가운데 가장 많은 163억달러의 흑자를 거둘만큼 수출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현재 EU는 ▲ TV(14%) ▲ TV용 브라운관(14%) ▲ VCR(8~14%) ▲ 냉장고(1.9~2.5%) ▲ 에어컨(2.2~2.7%) ▲ 전자레인지(5.0%) 등 우리나라 주요 가전에 낮게는 약 2%에서 높게는 14%까지 관세를 매기고 있다.

평균 세율이 높지 않고, 국내 전자업계의 동유럽 현지 생산 증가로 가전 직수출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관세 철폐로 경쟁력이 더욱 커지는 것은 분명하다.

휴대전화 등 통신기기, 반도체, 측정장비, 컴퓨터 관련 상당 수 품목은 이미 지난 1997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무(無)관세'로 거래되고 있어 FTA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그동안 EU가 TV 기능을 갖춘 LCD 모니터, 동영상 송수신이 가능한 3세대 휴대전화 등 일부 컨버젼스(융합) 제품을 '가전'으로 간주, 부과했던 10% 안팎의 관세를 피할 수 있게 됐다.

반대로 EU가 비교 우위에 있는 반도체 생산장비, 정밀계측기기, 전자의료기기 등은 현행 8% 정도인 관세가 없어지면 수입이 늘어날 전망이다.

섬유도 전반적으로 '득'이 '실'보다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만.중국과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대(對) EU 섬유제품 무역수지가 2007년 7억8천만달러에서 지난해 1천700만달러로 급감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인 화학섬유원사 등에 대한 4~12%의 관세가 사라지면 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EU 의류제품에 부과하는 8~13%의 관세도 함께 없어져 명품 브랜드를 포함한 유럽산 고가 의류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우려도 있다.

철강, 조선의 경우 한.EU FTA로 기대할 수 있는 직접적 관세 혜택은 거의 없다.

철강제품 상당 수 품목은 지난 2004년 우루과이라운드(UR) 관세협상에 따라 이미 '영(0)세율'을 적용받고 있고, 선박 역시 지금도 서로 관세를 매기지 않기 때문이다.

◇ 화학.기계 등 '긴장'
반면 지난해 EU와의 무역에서 25억달러나 적자를 본 화학업종(정밀화학+석유화학)의 경우 관세 철폐를 무조건 반길 처지가 아니다.

EU는 전 세계 화학산업 매출의 30%(2005년 기준)를 차지하고, 세계 30대 화학기업 가운데 바스프(BASF).쉘(Shell).바이에르(Bayer).토탈(Total) 등 무려 13개를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화학 제국'이다.

특히 정밀화학 분야의 경우 국내기업들의 규모가 영세하고 경쟁력도 취약할 뿐 아니라 현행 EU 관세율이 평균 4.5%로 우리나라의 6.87%보다 낮아 관세를 동시에 없애면 우리측 타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2006년 현재 의약(55%), 화장품.향료(35%), 농약(30.8%) 등 수입 정밀화학 시장에서 평균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EU 제품의 점유율은 관세 철폐 후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가 EU에 주로 수출하는 염.안료, 도료.잉크 등 저부가가치 제품의 경우 원천적으로 기술 경쟁력, 마케팅 등에서 열세인만큼 큰 폭의 수출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합성수지.고무 등 석유화학 제품 역시 현재 품목에 따라 최고 6.5% 정도인 관세가 없어져도, EU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동 석유화학기업들과의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하는만큼 수혜가 비(非)에틸렌 계열 등 일부에 국한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올해 들어 1~2월에만 이미 대(對)EU 무역 적자가 2억달러를 넘어선 일반기계류도 걱정이다.

EU는 일반기계 전체 22개 품목 가운데 식품가공기계.종이제조기계.농기계 등 13개 품목에서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막강한 EU 일반기계류가 현재 평균 약 7% 수준인 관세까지 면제받을 경우 현재 3분의 1 수준인 한국 수입 시장내 비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일반기계 및 부품의 EU 수입 시장 점유율은 현재 1% 안팎에 불과한 실정이다.

◇ 농업 '우려'..돼지고기 등 수입 증가 예상
가장 우려되는 부문은 한.미 FTA 때와 마찬가지로 농업이다.

품질 경쟁력을 갖춘 유럽산 돼지고기, 와인, 위스키, 낙농품 등의 관세까지 없어지면 수입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협정에서 쌀은 특수성을 인정받아 양허 대상에서 빠졌지만 나머지 품목들은 단계적으로 관세가 사라진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EU FTA로 인한 국내 농가의 피해 규모는 3천억원 안팎에 이른다.

양허 대상 품목들의 관세가 모두 철폐되면 국내 농가의 생산 규모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타격이 가장 큰 것은 돼지고기와 낙농품이다.

지금도 유럽산 수입이 많은 이들 품목은 관세가 철폐로 수입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더욱 막강해질 전망이다.

이 두 품목에서만 약 2천200억원 가량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품질 좋은 유럽산 농산물을 싼 값에 즐길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와인과 위스키다.

와인은 FTA 발효와 동시에, 위스키는 3년안에 관세가 없어진다.

이들 품목의 경우 대부분 수입산끼리 경쟁하는 시장이라 국내 업계의 타격도 크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신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