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각종 경제지표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 저점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대부분 은행장들은 여전히 비관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지표 개선은 '대세 하락' 중에 나타나는 기술적 반등일 뿐이고 하락 기조 자체가 꺾이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경기 저점은 빨라야 올해 3분기이고 그 후에도 V자 반등보다는 U자형이나 L자형의 느린 회복을 보일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한국경제신문은 31일 국내 주요 국책 · 시중은행장들을 대상으로 경기전망에 대한 긴급 조사를 실시했다.

◆미국 경제 언제 회복되나

미국 경제의 회복 시기를 묻는 질문에 대다수 은행장들은 "바닥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고용 악화와 소비 위축이 생산과 투자를 감소시키고 이것이 다시 기업 수익성 악화와 부실 여신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며 "미국 경제 회복 시기는 당초 예상보다 늦은 내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최근 일부 지표가 반등한 것은 급격한 경기 하강에 대한 반작용 측면이 강하다"고 밝혔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미국 경제를 지탱해온 가계소비가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며 "몇 달 더 추이를 살펴봐야 바닥론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 경기 회복이 단기간에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종휘 우리은행장 역시 "미국 경기가 바닥을 다져가고 있다는 전망에 동의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다른 은행장들에 비해 희망적인 의견을 내놨다. 강 행장은 "전 세계적인 부채 조정 과정이 최소한 2~3년은 진행될 것으로 보여 잠재성장률 하락과 장기적인 경기 하락 과정이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미국 금융시장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되고 있고 금리 인하와 재정지출 확대 등으로 경제지표들이 개선되고 있어 순환경기 측면에서만 본다면 미국 경제는 바닥을 다져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 언제쯤 회복될까

한국 경제가 경기 저점을 통과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올해 말이나 내년 초를 꼽는 의견이 많았다. 민 행장은 "2010년 초에 저점을 통과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 신한은행장은 "3분기까지는 하강 국면을 지속한 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야 회복 조짐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우리은행장은 "올 4분기에 가봐야 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고 윤 행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바닥론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행장은 "순환경기상으로 보면 우리 경제는 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며 "종합적인 경기 흐름으로 볼 때 3분기가 저점이 될 것"이라며 비교적 낙관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경기 회복 속도에 대한 전망에서는 '완만한 회복' 쪽에 무게가 실렸다. 민 행장은 "세계 경제 회복이 지연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V자형 반등은 어려울 전망"이라고 지적했고 윤 행장은 "U자형 회복이 될 것 같은데 바닥이 얼마나 길어질 것인지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경제 회복에 가장 큰 복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소비 둔화와 투자 부진을 꼽는 답변이 많았다.

김인식/강동균/유창재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