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관측만 무성하던 미국 중앙은행의 장기물 국채 직접매입이 현실화됐다.

18일 미국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앞으로 6개월간 총 3천달러 규모로 국채를 직접 매입키로 결정했다.

장기물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것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국채 시장에 `큰손'으로 직접 뛰어들어 본원통화를 공급하고 각종 금리의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국책의 직접 매입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장 FOMC의 회의결과가 발표되는 18일 오전까지만 해도 채권시장과 뉴욕 증시는 국채 직접매입 방침이 발표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면서 주가는 크게 하락하고 채권가격도 떨어졌다.

그러나 FOMC의 발표 직후 주가가 급반등하는 한편 10년만기 채권가격은 20여년만에 최대로 폭등했다.

FRB가 시장의 의표를 찌른 것이다.

시장이 FRB의 채권 직접매입의 가능성을 낮게 봤던 이유는 이번 조치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발권력을 보유한 중앙은행이 채권 시장에 직접 뛰어들면 이를 당해낼 만한 적수가 없기 때문에 채권가격은 중앙은행의 매입 시점과 물량에 따라 춤을 추게 된다.

이는 채권수익률 곡선이 완전히 망가지고, 과거의 가격흐름에 기초해 향후 시장의 전망을 예측해온 시장 참가자들의 고유한 판단력이 무력화됨을 의미한다.

이처럼 채권시장의 왜곡을 초래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며, 미국에서는 전쟁과 같은 국가적 위급상황 아니고서는 전례를 찾아 볼 수도 없다.

지금 미국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지난해 12월 정책금리가 제로(0)로 하향 조정된 이후 FRB는 사실상 `양적 완화' 정책을 펴왔다.

평상시에는 FRB가 환매조건부로 단기물 국채를 사고 팔아 단기금리에 영향을 미치면서 시중에 유동성을 조절해왔으나, 제로 금리로 인해 정책금리를 조절할 여지가 사라짐에 따라 FRB가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에 나선 것이다.

이러한 `양적 완화' 정책도 FRB가 금융기관들이 보유한 유가증권을 담보로 잡아 자금을 대출하거나, 모기지 증권을 인수하는 등의 간접 지원방식이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신용경색 현상이 완화되지 않자 FRB가 채권시장에서 만기 1년 이상의 장기물 국채를 매입하는 비장의 카드를 빼든 것이다.

FRB가 장기물 국채 직접 매입을 통해 노리는 것은 풍부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각종 실세금리의 인하를 유도하는 것이다.

FRB가 국채를 직접 사들이면 시중에는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그에 따라 시중 유동성이 확대되고 국채 금리를 기준으로 형성되는 여타 실세금리의 동반 하락을 기대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국채의 수요자로 등장하면 국채 수익률은 하락(국채 가격은 상승)하게 되며, 이는 자금시장 전반에 금리인하를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앞서 FRB는 모기지 금리가 너무 높아 신규로 주택을 매입하려는 수요를 위축시킴에 따라, 모기지 증권 인수를 통해 모기지금리의 인하를 유도한 바 있다.

이런 모기지 증권 인수에 따른 효과를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이번 국채 직접 매입의 배경이다.

향후 6개월간 3천억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하더라도 신용경색이 풀리지 않을 경우 FRB는 추가로 국채매입 규모와 기간을 확대하는 식으로 시장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 자동차할부판매와 학자금대출, 신용카드 대출 등 소비자들의 실생활에 직결된 부문의 자금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최대 1조 달러 규모의 기간물자산담보대출창구(TALF)에서 인수 가능한 담보증권의 대상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FRB의 입장에서는 국채의 직접매입 결과로 자체 대차대조표상의 자산(대출금) 규모는 한층 더 늘어나게 됐다.
이미 총자산이 2조달러에 육박하는 FRB의 총자산은 국채 직접매입으로 3천억달러가 증가하게 된 셈이며, 이는 또 다른 후유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추후 경기상황이 호전돼 FRB가 시중의 과잉유동성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그동안 매입했던 국채를 다시 팔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채 가격이 떨어져 FRB 입장에서는 큰 손실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FRB의 국채 직접매입은 궁극적으로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초래,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