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투자 요구가 쟁점이다. 기업들이 위기 이후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면 미리 투자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생각이지만 해당 기업들은 생존이 시급하다며 이 같은 요구를 압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본지가 16일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의 말을 들어봤다.

◆이정원 신한은행 여신심사그룹 부행장

기업들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동성 확보다. 유동성(현금성 여유자산)은 보통 매출액의 4분의 1~3분의 1로 유지하는데 경기가 나쁘니까 늘어난다. 원자재 가격 인상에 매출까지 줄어 같은 매출에도 필요한 자금이 많아지는 것이다.

중소기업 중 우수한 기업은 투자를 안 하고 기회만 보고 있다. 대기업 관련 납품이 확정된 것 등에 제한적인 투자가 있을 뿐이다.

◆김하중 우리은행 중소기업 담당 부행장

중소기업 투자는 일부 유망분야나 틈새 사업에 이뤄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저조하다.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투자자금 수요가 거의 없다. 대기업들이 투자해야 하지만 경기흐름이 좋지 않아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위기 이후를 대비해 투자해야 하는 것은 당위적으로 맞다. 다만 각 회사들의 의지나 판단이 중요한 것 아닌가.

◆최기의 국민은행 여신그룹 부행장

대기업 대출도 만기 연장을 거의 다 해 주고 있다. 중소기업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정부 정책 자체가 중소기업 우선이어서 대기업 대출이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대기업들이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고 느낄 수는 있다.

녹색산업,초기기술 보유 기업에 대해서는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무상태가 취약하더라도 기술력만 있으면 지원할 수 있다.

◆임창섭 하나금융 기업금융 부회장

은행들도 가능하면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는데 동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비상시국이라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지금 투자를 늘려야 할지,리스크 관리에 주력해야 할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다들 위축돼 있을 때 같이 쪼그리고 있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한대우 산업은행 기업금융본부 부행장

현재 투자를 해야 할지 아니면 리스크 관리에 주력해야 할지 한 방향으로만 말할 수 없다. 필요한 투자를 할 것은 하고 위기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니 거기에 대비해 현금도 확보해야 한다. 대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대출이나 회사채 만기연장보다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기업은 자금 조달 창구가 중소기업보다는 다양하기 때문에 신용상태에 맞게 대출만기를 연장해야지 일률적으로 연장해 주는 것은 곤란하다.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그동안 유동성을 확보해 놓은 게 있으니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자금 사정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운택 기업은행 여신운용본부 부행장

대기업에도 대출을 늘릴 필요는 있다. 그래야 하청업체한테 일감이 가서 중소기업도 살아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은행 입장에서 BIS(국제결제은행)비율이라든지 중소기업 대출을 늘려야 하는 목표가 정해져 있으니까 대기업 대출을 늘릴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미래 성장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에는 리스크가 있더라도 대출을 할 계획이다.

이심기/정재형/정인설/유승호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