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는 빌린 배를 다시 빌려주는 용선 체인이 관행으로 굳어있습니다. 업황 악화로 가장 마지막에 배를 빌린 영세업체가 부도나면 연쇄부도로 이어집니다. 화약고가 따로 없습니다. "(A선사 K사장)

글로벌 경제위기로 국제무역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해운업계가 붕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위기는 철광석과 유연탄 등 건화물을 실어나르는 벌크선에서 시작됐다. 넘쳐나던 물동량으로 하루 10만달러를 주고도 구하기 힘들었던 벌크선 용선료가 작년 12월 1000~2000달러대로 폭락,용선체인으로 묶인 업계 전체가 공멸의 분위기에 휩싸인 것.

작년 11월 국내 20위권 해운사인 파크로드가 용선료를 제때 받지 못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한데 이어 지난달엔 해운업계 7위 업체인 삼선로직스마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파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용선체인의 고리 한 부분이 끊어지면서 용선료를 받기 위한 업체 간 법정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0~12월 미국 연방법원에 접수된 국내 선사의 클레임 건수는 82건에 이른다. 건당 청구금액은 2000달러에서 최고 1359만7000달러까지로 다양하다.

연간 계약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을 해온 컨테이너선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진해운,현대상선으로 대표되는 컨테이너선 업계는 전 세계 대형 화주들과 연간 계약을 맺고 유럽,미국,중국 등 노선에 물건을 실어나른다. 연간 계약으로 벌크선 운영보다 안정적이지만 최근 물동량 급감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머스크 등 외국 대형 선사들은 작년에 전 세계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비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는 제로 운임을 제시하며 '치킨 게임'에 돌입,후발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싱가포르항만과 수빅만에는 물동량이 없어 수개월 동안 정박해 있는 빈 배들이 늘고 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주사 중 하나인 독일의 오펜사는 최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제8회 독일선박금융포럼에서 "현재 세계 선재의 약 8.8%에 달하는 100만TEW의 컨테이너선이 계선돼 있는데 2011년에는 22%가 계선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