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이 비로소 출자총액제한의 족쇄에서 풀려났다. 1987년 4월 자산규모 4000억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출총제가 도입된 지 22년 만이다.

출총제는 대규모 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의 자산 2조원 이상 중핵기업은 계열사든 비계열사든 가리지 않고 순자산액의 40%를 초과해서 출자하지 못한다는 규정이다. 대기업의 투자 활동에 대한 사전적 총량적 규제로서 건전한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불량 규제'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불법적인 행태를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구조 그 자체를 문제 삼고,나아가 기업 규모의 확대 자체를 '죄악시'하는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규제로 출총제를 꼽았다.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낡은 규제'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참여정부는 끝까지 출총제 폐지를 주저하며 갖가지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미봉책으로 일관해왔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출총제가 한번 폐지된 적이 있다.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원회는 대기업 간 적대적 인수 · 합병(M&A)과 경영권 방어를 동시에 허용하려는 취지에서 출총제를 없앴다. 하지만 2001년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되살아나(법개정은 1999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 법안이 출총제를 없애는 대신 시장 참여자에 의한 자율적 감시 기능은 강화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2조원 이상)의 주식소유 현황 등에 대한 공시제도를 신설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총제의 질긴 사슬을 결국 끊어냄으로써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라는 당초 색채를 보여줬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평가다. 재계도 새로운 사업 기회를 넓혀줄 것이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지주회사 규제는 이번에도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200%로 제한하고 비계열사 주식보유를 5%로 한정하던 규정을 손질하는 것을 4월로 미룬 것이다. 대기업들은 지배구조를 선택하는 데 운신의 폭이 보다 넓어질 것을 기대했지만 조금 더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

차기현/김태훈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