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잠을 깬 뒤 밤새 뒤척이는 날이 늘었습니다. 밤잠을 푹 자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

4대 그룹 계열 A사의 김모 사장은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지만 이내 깨어나기 일쑤"라며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몽롱한 상태로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해외 거래선으로부터 주문 취소가 잇따르고,불어나는 재고로 감산이 장기화되면서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탓이라는 게 김 사장의 자가 진단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B사의 이모 사장은 최근 '버럭 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평소 반 갑이던 흡연량도 한 갑 이상으로 늘었다.

이 사장은 "지난 1월 매출이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며 "외환 조달이 불가능해 해외 공장 증설 계획도 올스톱됐다"고 한숨 지었다. 그는 "사업이 어려우니 성격도 바뀌는 것 같다"며 "시도 때도 없이 울컥 화가 치밀고 우울증 초기 증세까지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CEO '불황 스트레스' … 잠 설치고 울컥
한국경제신문이 삼성,현대 · 기아자동차,LG,SK 등 주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고위직 임원 1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대부분 CEO들이 불황형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질문에 대해 95%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다소 스트레스를 받는다''상당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응답이 각각 69%,21%,5%로 조사됐다.

스트레스로 인한 첫 번째 증상은 밤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다. 전체 응답자의 55%가 '최근 밤잠을 설친다'고 답했다. 10%는 '잠을 푹 잔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고 답한 CEO들은 평균 1~2회(94%)가량 중간에 깬다고 답했다. '불면증이나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응답자도 11%나 됐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유는 '회사 걱정과 스트레스 때문'이 79%로 가장 많았다.

'울컥증'이 생긴 CEO들도 많았다. '요즘 들어 전에 비해 자주 짜증이나 화를 낸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45%에 달했다. 이 중 4명(4%)은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짜증이나 화를 낸다'고 토로했다.

술과 담배도 잦아졌다. 담배를 피우는 응답자 35명 중 60%는 반 갑,10%는 한 갑가량 평소보다 흡연량이 늘었다. 음주 횟수가 늘었다는 응답자는 29%에 달했다.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는 '독서'(35%)'골프'(12%)'공연 관람'(8%)'달리기'(6%) 등이 꼽혔다.

송형석/서보미 기자 click@hankyung.com